모든 사회지표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지표는 무엇인가. 역시 국내총생산(GDP)이다. 그것은 한 나라의 경제 상황을 종합적으로 알려주기 때문이다. 어떤 나라를 떠올릴 때 "1인당 GDP가 얼마나 되지"를 먼저 묻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고도성장을 구가한 한국의 경우 특히 GDP를 금과옥조처럼 여긴다. 천지개벽을 이룬 '한강의 기적'은 GDP 성장률에 모두 녹아 있다. 1971년 이후 9% 이상을 성장한 해가 열 번이고 30년간 평균 성장률이 7%가 넘는다. 고도성장이 힘들어진 지금도 GDP는 국가 운영의 가장 중요한 지표로 간주된다.
하지만 GDP가 과연 경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는지는 의문이다. 경제가 세계화되면서 GDP 성장률과 실물 경기의 거리감이 커지고 있다. 이른바 '성장의 낙수 효과'가 이전만 하지 못한 것이다. 특히 무역의존도가 80%가 넘고 대기업의 수출 비중이 70%에 달하는 한국은 더욱 그렇다. 이미 GDP가 삶의 질을 반영하는 지표로서 한계가 있기 때문에 새로운 지표를 개발하려는 노력은 활발히 진행돼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행복지수나 유엔의 인간개발지수가 대표적이다.
필자는 GDP지수와 사회적 진보 지수(Social Progress Indicator·SPI)를 함께 활용할 것을 권한다. SPI는 세 차원으로 구성된다. 의료·주택·치안 등 인간적 기본 욕구 차원, 지식·소통·생활체육·친환경 등으로 이뤄지는 웰빙 차원, 그리고 개인적 권리·선택 기회, 관용과 포용, 교육의 질 등으로 이뤄지는 기회의 차원이다. 성장률과 사회적 진보는 길게 보면 상관성이 높다. 하지만 갈수록 이 둘의 관계는 그 나라의 국가 리더십, 사회문화적 배경, 민주주의의 수준 등에 따라 달라진다.
코스타리카는 1인당 국민소득이 한국의 절반에도 못 미치지만 SPI는 약간 높았다. 평등을 지향했던 러시아 등의 사회적 진보 지수가 GDP에 비해 낮은 수준이라는 것도 아이러니이다. 같은 아프리카 나라들 가운데서도 세네갈이 SPI에서는 월등함을 보였다.
한국은 평균 점수가 77점인데 분야별 장단점이 가장 분명한 나라에 속한다. 의료·정보·교육기회 등에서는 90점대의 최고 점수를 보였지만 환경 면에서는 40점대의 낙제점이다. 관용이나 포용 측면에서 60점대의 낮은 점수를 보였다. '빨리, 빨리'로 집약되는 성장 지상주의 모델의 속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경제 성장과 사회적 진보가 함께 가는 나라가 '좋은 사회'라고 한다면 우리도 이제 나라 경영의 발상을 바꿔야 한다. 손에 망치를 들면 못만 보이는 법이다. GDP만 들고 있으면 총량적 발전 위주로만 생각하게 돼 있다. GDP가 성장하면 개인의 행복은 따라오는 것이라는 '오래된 발상'에서 이제는 빠져나오자.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어서면 이미 행복은 GDP 순이 아니다. 국가가 얼마나 세심하게 국민 한 사람의 행복을 지원하려는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은 크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한 손에는 GDP를 들되, 다른 한 손에는 SPI를 들자. 그리고 성장은 수단이고 행복이 목적임을 확인하자. 발상의 전환은 이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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