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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지도로 길만 찾는다? 종교·정치사까지 보인다

■ 욕망하는 지도

제리 브로턴 지음,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고려 전복을 정당화하기 위해 '통치권은 오직 하늘에서 나온다'는 고대 중국의 천명(天命)사상을 끌어들였고, 통치 이념을 보여주는 두 종류의 지도를 주문했다. 하늘의 지도와 땅의 지도였다. 하늘을 그린 천문도 '천상열차분야지도'는 경복궁에 전시돼 새 왕조가 하늘의 뜻이라는 정당성을 부여했다.

땅을 그린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통합된 땅과 역대국가와 도시를 표시한 지도라는 뜻이며, 동아시아에서 제작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다. 조선을 표현한 최초의 지도이고 아시아에서 최초로 유럽을 표시한 지도였다.

조선은 중국 다음 가는 두 번째로 큰 땅덩이를 차지하고 있고, 일본은 조선의 3분의 1 크기다. 아프리카와 유럽 역시 실제보다 훨씬 작다. 이 지도는 작지만 당당했던 새 왕조가 덩치 큰 제국의 영역 안에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방법을 보여준다.

영국 퀸메리대학교 교수이자 지도사(地圖史)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저자는 "지도는 항상 그것이 나타내려는 실체를 조종한다"는 논지로, 지도가 시대의 거울로서 사회적 욕망을 반영하고 있음을 12개의 세계지도로 보여준다.

서기 150년경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프톨레마이오스가 펴낸 '지리학'의 지도들은 수학,물리학,천문학 등 최신 과학을 보여준다. 12세기 알이드리시가 제작한 지도는 기독교인과 무슬림뿐 아니라 그리스인과 유대인까지 각 문화권의 교류를 담고 있으며, 13세기 영국의 '헤리퍼드 마파문디'는 신이 창조한 세상을 시각화해 기독교의 절대성을 이해하는 도구로 쓰였다.



1662년 네덜란드에서 출간된 지도책 '대아틀라스'는 부의 축적을 욕망하는 시대상을, 최초의 국가지도인 18세기 프랑스의 지도는 '국가주의'를 구체적으로 반영했으며 1904년 영국의 해퍼드 매킨더가 내놓은 '역사의 지리적 중추'는 정치적 욕망을 투영하면서 히틀러의 국가주의적 탐욕을 자극하는 계기가 됐다.

"모든 지도는 한 가지를 보여 주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다른 걸 보여주지 못하며, 세계를 한 가지 방식으로 보여 주되 그 결과 다른 방식으로 보여 주지 못한다. 그 한 가지를 결정하는 것은 때로는 정략적일 수도 있지만 언제나 독창적이다."

이렇게 주장을 펴는 저자는, 모든 정보를 담으려 하는 '구글어스'의 정보 독점에 대한 경고로 책을 마무리 한다. 3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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