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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국인들의 증시 외면

양만기 자산운용협회장

근년 들어 외국인들은 매집하다시피 한국의 우량주식을 사고 있는데 정작 한국인들은 증시를 외면하고 있다. 이러한 변고는 한국 투자자들이 그간의 주식투자 경력에서 아픈 기억만 갖고 있는 게 큰 원인이다. 지난 80년 100포인트에서 시작한 종합주가지수는 그동안 서너차례 1,000포인트 수준에 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더 이상 상승하지 못한 채 후퇴했고 기업의 흥망과 경기부침이 급변하다 보니 주식에 투자해 본전 건지기는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3월 말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90~2003년의 수정주가 평균이 하락한 기업이 77%라고 하니 현재 이 땅의 많은 투자자들이 감내해온 그간의 고통을 미뤄 짐작할 만하다. 다양한 부동산 투자에 대한 열기도 증시 외면의 주요인이다. 불균형 성장으로 각종 통화량 지표가 팽창돼 나타난 막대한 부동자금은 사상최저 금리시대를 맞아 기업활동에 대한 투자를 외면한 채 아파트 등으로만 집중되고 있다. 더욱이 정부의 즉흥적 대증요법들의 효험이 예전과는 다른 듯하다. 주식시장 자체에 대한 투자자의 불신도 작금의 상황을 초래하게 한 또다른 원인이다. 대주주가 기업분할이나 물타기 또는 회계조작 등을 통해 기업내용을 훼손시키거나 비자금ㆍ정치자금 등을 임의적으로 조성했다는 보도 등으로 인해 일반투자자들의 기업에 대한 신뢰는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게다가 바깥 세계는 경기회복을 전해오지만 국내경기는 여전히 바닥에 머물고 있으며 한반도는 정치분란과 북핵문제 등으로 새로운 창조적 발전을 향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근년 외국인들 위주로 형성된 주가회복이 외국인들의 눈빛 여하에 따라서 일시에 탈출 장세로 전환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형세가 돼 더욱 국내투자자들의 관심을 움츠러들게 한다. 우리 증시는 국제통화기금(IMF) 이후 단기간에 외국인 주주비율이 세계최고 수준에 달한 기록 외에도 많은 특징을 나타낸다. 주요 우량 대기업의 유동주식이 거의 외국인 손에 넘어갔고 거래회전율과 파생상품 거래규모가 세계최고 수준이며 전자거래비율도 최고 수준이다. 상장사 중 80%가 주가순자산비율이 1.0배 이내로 청산가치에도 미달할 만큼 저평가돼 있다. 그러나 외국인들이 한국증시를 다른 각도에서 보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봐야 한다. 우선 지금의 국내적 혼란에 대해 발전을 향한 성장의 고통으로 보고 “성장통을 즐겨라!(Enjoy the growing pains)”고 조언한다. 기업 문제도 미국에 견줘보면 본질은 아닌 듯싶다. 미국에도 엔론 사고가 있었고 제너럴일렉트릭(GE)의 잭 웰치도 회삿돈을 유용한 사실들이 드러난 바 있다. 우리가 그들 기업의 행태를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데 우리 기업에 대해서는 선악이라는 2분법적 가치판단으로 지나친 자기비하를 하는 것은 아닐까. 더욱이 SK에 대한 소버린의 매집사건에 대해서 외국인들은 한국기업인들이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고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개선시킬 것이라고 판단한 반면 우리들은 기업의 부정적 측면만을 더 확인한 것을 보면 지난해 이후 계속해서 시장상황을 오판했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국내 유수 기업 중 상당수는 수익성이 크고 국제 경쟁력도 갖췄다고 보는 견해가 그들의 시각이다. 또한 얼마 전 당국의 분석에 의하면 기업회계에 관한 그간의 잘못된 관행이 최근에는 거의 시정됐다고 하니 이제는 기업의 재무제표를 신뢰하고 차분히 이를 분석하면서 투자대상을 선별해도 괜찮을 듯하다. 이런 요인들 외에도 그간 증시참여를 주저하던 각종 기관과 연기금의 풍부한 자금이 유입되고 개인들의 부동산에 대한 선호가 전환되면 한국인에 의해 한국증시가 부활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정부가 각종 제도를 정비하고 개인 장기투자를 장려하는 방법으로 투자를 유인하며 투자자 교육과 소비건전화 운동을 통해 자금의 흐름을 정상화시키는 일이 어느 때보다 긴요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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