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억울한 일을 당하기 마련이다. 분쟁에 휘말려 본의와 무관한 협상을 강요받기도 한다.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이자 세계적인 협상 전문가인 저자 로버트 누킨은 이처럼 골치 아픈 상황에 빠뜨리는 상대를 '악마'라 칭한다. 보통은 악마를 응징과 배척의 대상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저자는 "필요하다면 악마와도 협상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영어 원제가 'Bargaining with the Devil(악마와 흥정하기)'이다. 저자는 역사 속에 등장했던 분쟁들을 비롯해 기업 간에 혹은 직장 내에서 일어날 수 있는 공적인 분쟁, 부부나 가족끼리 일어날 수 있는 사적인 분쟁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삶에서 만날 수 있는 8가지 다양한 분쟁들을 사례로 협상의 기술을 소개한다. 2차 세계대전의 혼란 속에서 유대인을 이끌었던 루돌프 카스트너는 집단 학살의 위험에 놓인 동포들을 구하기 위해 나치와 위험한 협상에 나섰다. 같은 시기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은 긴박한 전시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아돌프 히틀러와의 협상을 거부했다. 물론 오늘날 우리는 히틀러가 결국 패배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당시의 카스트너나 처칠과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어느 쪽을 선택할지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처럼 결정이 어려운 상황에는 항상 '악마'가 등장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카스트너처럼 악마의 유혹을 거부한 채 신념을 가지고 협상했으며 목적한 바를 어느 정도 이루었음에도 주위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인물이 있는가 하면 처칠처럼 마지막까지 협상을 거부한 끝에 결국 영웅이 된 인물도 있다. 어떤 상황에서든 악마와 무조건 타협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한편 기업 간의 분쟁과 그 해결을 위한 협상도 정치∙사상적 분쟁 못지 않게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저자는 IBM과 후지쯔 간의 분쟁 때 직접 해결을 위해 나선 바 있다. 이들의 갈등은 스마트폰을 둘러싼 삼성과 애플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요즘의 분쟁도 연상시킨다. IBM과 후지쯔의 사례를 두고 저자는 "서로 원하는 것과 양보해야 하는 것이 명확한 기업 간의 분쟁에서조차 협상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자사의 이득이라는 뚜렷한 목적이 있는 기업 간의 협상에서도 '악마화'는 발생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방해하는 많은 요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렇다면 악마와 현명하게 협상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자는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수년간 협상에 관해 강의하고 수많은 분쟁을 해결했던 경험을 통해 '악마와 공존하는 현명한 방법'을 체득했다. ▦얻고자 하는 것과 잃게 될 것을 체계적으로 비교하라 ▦혼자 분석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라 ▦예측은 중요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정의' 때문에 실용적 판단을 무시해선 안 된다, 이 4가지가 하버드식 협상술이다.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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