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조업체들은 내수시장에 너무 의존하는 바람에 갈라파고스 증후군에 빠졌다는 비판이 나올 만큼 보수적 경향을 보여왔다. 마이클 우드퍼드 전 올림푸스 최고경영자(CEO)는 일본의 경영자들이 현상유지에만 골몰할 뿐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이나 창조적 파괴를 기피해 경제 전체를 바닥으로 끌어내리고 있다고 꼬집을 정도다. 그런 일본 기업들이 단지 사업 부문을 없애는 데 머무르지 않고 경쟁사와도 과감히 손잡으며 산업구조 재편에 발벗고 나선 것은 예사롭게 넘길 일이 아니다.
발전사업만 해도 해외 시장에서 한일 양국의 자존심 경쟁이 가장 치열하게 벌어지는 분야다. 인프라 투자가 활발한 동남아 시장의 경우 일본 기업들이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한국 업체들을 집중적으로 견제하는 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동 지역에서도 민자발전소 등 대형 프로젝트를 놓고 양국 수주전이 펼쳐지고 있다. 일본 제조업이 탄탄한 기술력에다 규모의 경쟁력까지 갖춰 공격적으로 나선다면 우리 기업들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승부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 산업계는 경기가 나쁘다는 이유로 비핵심 사업을 정리하거나 인력 축소에 나서는 등 구조조정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선까지 겹쳐 지배구조나 독과점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니 경쟁사와의 합병이나 덩치를 키우겠다는 전략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분위기다. 금융위기 이후 추진돼온 대형 M&A가 백지화되거나 연기되는 사태도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생각하면 안타까울 뿐이다. 지금처럼 내수시장의 점유율이나 따져 묻는 경쟁제한적 풍토로는 일본을 영원히 추월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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