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이후 개정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지 넉 달째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발표한 100일 경과 모니티링 자료에 따르면 책값 거품이 빠지면서 '착한 가격'의 도서 출간이 증가했고 대형 오프라인 서점의 매출도 소폭 상승했다. 이번 도서정가제로 얻은 소기의 성과로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눈에 띄는 것은 지역 서점들의 설문조사 결과다.
판매 동향이나 전망에 있어 60% 이상이 별다른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오히려 편법적 할인제도나 유통구조의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두드러진다.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서정가제는 무엇을 위한 개선책인가. 소비자를 우롱하는 '제2의 단통법'이라든지, 출판사나 온라인 서점에 부담만 주는 비시장적 제도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지금, 건강한 출판문화산업 생태계 조성이라는 도서정가제의 본디 목표를 되새겨 보아야 한다.
도서정가제의 탄생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유기적이고 거시적인 비전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
지역 도서관이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동네서점 살리기'라는 이름으로 거래를 의무화하는 것은 올바른 변화이기는 하지만 부분적인 방편일 뿐이다.
지난 10년간 1,258개의 동네서점이 폐업했다는 사실은 차치하고라도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된 지역 서점 지원예산은 문화융성을 앞세운 정부의 국정철학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척박한 땅에 간신히 살아남아 있는 뿌리마저 메마르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도서정가제는 약육강식의 시장 논리로부터 생태계의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 그 첫 단추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책의 세계는 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창조 중 하나다. 동네마다 책 마을과 문화 거점 공간이 있어 아이와 어른 모두가 생각을 교류하고 마음을 바로 세우는 일이 일상이 되기 바란다. 그것이 문화융성이고 희망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