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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어렵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렵게 생각한다. 경제를 잘 안다는 사람들이 설명을 어렵게 하기 때문일까. 무엇보다도 경제가 '물신'과도 같은 '돈'에 관련돼 있다는 생각에 경외감 같은 것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명작의 경제'는 경제를 쉽게 풀었다. 이를 위해 저자가 활용한 도구는 '명작'이라는 소설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소설의 내용을 가지고 경제원리를 설명했다. 책의 구조가 또 소설 형식을 취한 것도 재미있다. '소설'을 소재로 '경제'를 말하는 소설인 셈이다.
책의 내용은 이렇다. '하서인'이라는 이름의 여기자가 나온다. 신문사의 주말섹션 담당 부서로 옮긴 후 평소에 생각하던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경제기사가 어렵다는 독자들과 주위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해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갈 기사를 작성하기로 한 것이다. 이 기사의 프로젝트명이 바로 '명작의 경제'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의 역대 '명작'을 이용해 경제원리와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다. 우리의 하 기자가 사용하는 명작은 레미제라블ㆍ제인 에어ㆍ수레바퀴 밑에서ㆍ시칠리아에서의 대화ㆍ안나 카레니나ㆍ분노의 포도ㆍ홍수의 해ㆍ뻬드로 빠라모ㆍ백년의 고독ㆍ나의 라임오렌지 나무ㆍ생사피로ㆍ황홀한 사람ㆍ상록수 등 모두 13편이다.
물론 단순히 명작 내용을 이야기하고 이에 경제법칙을 적용하는 교과서적인 전개는 하지 않는다. 우리의 하 기자는 이런 명작들의 배경이 되는 세계 여러 나라를 직접 돌아다닌다. 그리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해당 명작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인연을 엮어서 보편적인 경제원리와 연결시킨다. 이런 식으로 경제문제들을 현장에서 접하고 분석하면서 적절한 대책까지도 찾는 것이다.
'레미제라블'이 처음 펼쳐지는 소설이다. 저자는 파리를 직접 방문하면서 이 명작과 관계 있는 사람을 찾는다. 책은 하 기자가 취재하는 인터뷰와 또 그녀의 일기라는 이야기 구조를 갖는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장발장이 살던 시대의 재정악화, 하이퍼인플레이션, 사회안전망 미비, 중상주의의 폐해를 현대 사회의 제반 문제들과 연결시킨다. 현대의 세계화, 기술진보, 정보화, 고령화, 경제통합 문제와 대비해 장발장이 빵을 훔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설명한다. 단순히 분석에 그치지 않고 저자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그 시대와 현 시대의 양극화를 해소할 '장발장의 세가지 원리'등 해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소설 형식으로 구성한 스토리 흐름을 따라가면 독자들은 13편의 명작과 함께 회복탄력성, 교육, 정치와 경제, 행복, 일자리 창출, 기후변화, 토지와 자본, 글로벌 거버넌스, 도시화, 고령화, 개발협력이란 경제적 현안들을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공무원이다. 1990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현 기획재정부에서 20년간 공직생활을 했다. 현재는 미국 워싱턴D.C 소재 미주개발은행의 이사실에서 한국대표로 근무하고 있다. 공직생활에 대한 경험을 통해 경제문제를 보다 쉽게 풀어낼 수 있는 소재를 생각했고 이를 소설과 연계시켰다.
공직에 있다는 점은 미래를 다소 낙관적으로 본다는 점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다. 에필로그가 지금으로부터 20년 뒤인 2033년으로 설정돼 있다. 기술혁신과 함께 남북통일이 되고 입시지옥이 사라진다는 설정은 설마 그럴까 하는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경제는 중용을 필요로 한다는 저자의 지적은 충분히 공감을 일으킬 만하다.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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