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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 물러나고 3세 경영 떠오른다

■ 정기주총 시즌 개막… 오너 일가 사내이사 진퇴 주목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개막하면서 오너 경영자들의 사내이사 진퇴 여부에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등기이사는 회사를 대표하는 동시에 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는 등 부담도 안게 되는 자리. 올해 역시 이런저런 이유로 사내이사직을 내놓는 오너 경영자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새롭게 사내이사직에 오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 오너 일가의 사내이사직 선임은 책임경영 차원에서 바람직한 측면이 있지만 일각에서는 오너가의 권한 남용이라는 엇갈린 평가 역시 끊이지 않고 있다"면서 "3세 경영인으로의 세대교체가 급속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이는 올해는 특히 사내이사의 진퇴가 큰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9일 재계에 따르면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14일 열리는 주주총회를 끝으로 현대제철 사내이사를 사임한다. 현대차그룹 측은 "지난해 3고로 건설 등 대형 시설투자와 현대하이스코 냉연사업 합병 등 현안을 마무리한 만큼 정 회장이 올해 임기 종료를 기점으로 사내이사에서 물러나기로 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반면 정 회장 아들인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현대제철 사내이사를 계속 맡는다. 재계 일각에서는 정 회장 사임에 대해 "정 부회장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것"이라고도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차그룹 측은 "정 부회장의 경영권을 강화하려는 의도도 아니고 연봉 공개규정 때문도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LG그룹에서는 올해 임기가 종료되는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이 주주총회를 통해 재선임될 예정이다. 구 부회장은 최근 LG전자 실적 개선을 이끄는 등 뚜렷한 성과를 내고 있어 업계는 이번 재선임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증권시장 관계자는 "오너 일가 경영자의 사내이사 활동은 책임경영이라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크지 않은 지분율로 경영을 지배한다는 점은 부정적"이라면서 "구 부회장의 경우 책임경영이라는 긍적적 효과가 더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4대그룹 중 SK의 사내이사 변화폭이 가장 크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최근 실형 확정 판결을 받은 데 도의적 책임을 지는 의미로 SK㈜, SK이노베이션, SK하이닉스, SK C&C의 사내이사직을 사임하고 그룹 회장 직함도 내려놓았다. 최 회장의 임기는 SK㈜와 SK이노베이션은 올해까지이고 SK하이닉스와 SK C&C는 각각 2015년과 2016년까지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마찬가지다. 김 회장은 2월11일 파기환송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은 후 업무제한 규정 등에 따라 ㈜한화 등 7개 계열사 등기이사직을 사임했다.



식품·유통을 중심으로 한 그룹 쪽에서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현재 이사로 등재된 7개 회사 중 CJ E&M, CJ CGV, CJ오쇼핑에서 물러나고 나머지 계열사에서도 임기 종료와 함께 물러난다는 방침이다. 지난해에는 신동빈 롯데 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담철곤 오리온 회장 등이 사내이사에 물러났다.

오너 경영인의 등기이사 사퇴 이면에는 강화되고 있는 국민연금의 발언권도 한몫을 하고 있다. 실제로 국민연금은 지난해 SK C&C 주총에서도 "기업가치를 훼손하고 주주 이익을 침해했다"며 최태원 회장 사내이사 재선임에 반대표를 행사한 바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현대증권 주총에서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 대해 '과도한 겸임'을 이유로 반대표를 던졌고 올해 역시 신사현 만도 대표의 연임을 저지하겠다고 밝히는 등 의결권을 더욱 적극적으로 행사할 계획이다. 이 같은 분위기 때문인지 14일 주총과 이사회 직후 공식 취임하는 권오준 포스코 회장도 지난달 포스코의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의결권 강화 방침을 분명히 한 것이 오너 경영자의 사내이사 진퇴 여부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귀띔했다. 국민연금의 반대를 받아 괜한 구설에 오르느니 사내이사를 사임하는 게 편하다고 판단하는 오너 경영자가 많다는 것이다. 이사회에 친정체제만 구축한다면 사내이사를 하든 안 하든 '경영 지배'라는 결과는 어차피 똑같기 때문이다. 여기에 올해부터 연봉 5억원 이상의 사내 이사는 보수를 공개해야 하는 부담이 작용하고 있다.

반면 새롭게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주로 3세 경영인이 이에 해당된다. 세아그룹에서는 두 명의 신규 사내이사가 나온다. 우선 세아제강은 작고한 이운형 회장의 동생인 이순형 회장을 신규 사내이사로 선임할 예정이고 세아홀딩스는 고(故) 이 회장의 장남인 이태성 전략기획본부장(상무)을 신규 등기이사로 선임한다. 효성은 조석래 회장의 삼남인 조현상 부사장을 신규로 선임한다. 이런 가운데 삼성그룹 3세 중 유일하게 등기이사에 오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역시 이번 주총에서 재선임에 나서는 등 3세 경영인에서는 등기이사를 통해 경영 능력을 인정받으려는 분위기 역시 확산되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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