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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독립운동가’ 김익상 선생
입력2010-05-31 10:40:08
수정
2010.05.31 10:40:08
국가보훈처는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투척하고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 기이치 처단(황포탄의거)을 시도하는 등 독립투쟁을 전개하다 20여년의 옥고를 치른 김익상(1895~?) 선생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옛 경기도 고양군 용강면)에서 태어난 선생은 비행학교에 입학하기로 결심하고 중국으로 갔다가 베이징에서 김원봉 의열단장과 만났다.
이 만남은 선생이 의열단원이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1921년 9월9일 베이징에서 김원봉으로부터 폭탄 2개와 권총 2정을 받아 국내로 들어온 선생은 9월12일 전기 수리공으로 가장하고 서울 남산의 조선총독부 청사로 들어가 폭탄을 설치해 폭발시켰다.
조선총독부 폭파 이후 일제 고관 암살을 모색하던 선생은 일제 군부의 거물인 육군대장 다나카 기이치가 상해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오성륜, 이종암과 함께 거사를 계획했다.
선생은 1922년 3월28일 중국 상하이 황포탄 세관부두에서 다나카 대장을 기다리다가 그가 나타나자 총탄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나카는 황급히 도망쳤고 폭탄마저 불발돼 거사는 실패하고 말았다.
의거 직후 오성륜은 현장에서 체포됐고, 선생은 피신 중 중국 순경에게 붙잡혀 상하이 일본총영사관에 수감됐다가 나가사키공소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감형으로 20여년의 옥고를 치르고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일본인 고등경찰이 연행된 후 선생의 행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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