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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과 철강. 어느 게 단단할까. 답은 명확하지만 앞으론 달라질 수 있다. 금속보다 가볍고 강한 '슈퍼 플라스틱' 때문이다. 꿈의 신소재이건만 미국과 일본의 전유물이던 슈퍼플라스틱 개발에 SK케미칼이 깃발을 꽂았다. 시제품 개발에 성공한 SK케미칼이 내년부터 생산에 들어가면 미국 티코나와 일본 도레이에 이어 세계 3위에 올라서게 된다. 40년이라는 기술 격차도 단숨에 줄였다. 대단한 일이다.
△플라스틱의 등장 시기는 1870년. 값비싼 상아 대신 당구공 재료로 개발됐으나 걸핏하면 터지는 통에 기억에서 사라졌다. 1909년 미국인 발명가 베이클랜드에 의해 안전한 플라스틱이 등장했어도 2차대전에서야 각광 받기 시작했다. '성형하기 쉽다'는 그리스어 '플라스티코스'에서 유래한 플라스틱은 쓰임새를 무한히 확장한 끝에 슈퍼플라스틱으로까지 변이해 '산업의 쌀'의 위치를 넘보게 됐다. 꿈의 신소재로 각광 받는 탄소섬유 역시 슈퍼플라스틱의 한 갈래다.
△국내 슈퍼플라스틱 개발의 주인공이 SK라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교복 원단 생산업에 머물던 SK의 약진은 고 최종현 회장의 '폴리에스테르필름 신화'에서 싹텄다. 1975년 그가 폴리에스테르필름 개발 계획을 내놓자 기술제휴 요청을 받은 일본업체는 코웃음쳤다. 일부 회사 간부들도 등을 돌렸다. 올빼미처럼 연구해 개발에 성공하자 일본업체들은 덤핑 공세에 나섰으나 고 박정희 대통령의 지원에 힘입어 SK는 꿈을 이뤘다.
△만약 최 회장이 안팎의 반대에 굴복했다면 오늘의 SK는 없다. 마찬가지로 '일본과 격차가 얼마나 큰데 반도체를 하려느냐'는 반대를 물리친 이병철 삼성 창업주와 '조립이나 하라'는 권유를 뿌리친 정주영 현대 창업주의 결단이 아니었다면 삼성과 현대차의 모습은 지금 수준에훨씬 못미쳤을 것이다. SK케미칼의 슈퍼플라스틱에서 선대가 남긴 창조적 유전자(DNA)가 엿보인다. 슈퍼플라스틱이 21세기 퀀텀점프(대약진)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문성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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