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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국내 로펌(법무법인) 업계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국내 굴지의 대형 로펌이 중소기업을 상대로 수임 경쟁을 벌이는가 하면 일부 변호사는 수임료 200만~300만원짜리 소액 소송도 마다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변화의 시대를 맞아 특정 분야에서 전문성을 살려 틈새 시장 개척에 나서는 소형 로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 강소 로펌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대형 로펌과의 경쟁에서도 어깨를 나란히 하며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이에 서울경제신문은 불황 속에서도 탄탄한 입지를 구축해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작지만 강한 로펌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지난 2000년 대우전자의 분식회계로 피해를 입은 소액주주 350명은 김우중 대우전자 회장과 임직원, 회계법인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주가조작으로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이 받을 손해액에 대한 명확한 판례가 없던 상황이라서 당시 소송은 법조계 안팎의 큰 관심을 받았다.
1심 재판부는 "분식회계 발표 이후 주가 하락으로 입은 손해에 대해 회사측의 책임이 있다"며 소액주주들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1심을 깨고 "분식회계와 주가하락 간의 인과관계가 없다"며 패소 판결을 내렸다. 소액주주들은 곧바로 상고했고 대법원은 "대우전자의 주가변동이 분식회계의 영향 때문이었다"며 1심과 같이 판결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손해액 산정과 관련해 "가격 반등 직전의 최저가격과 분식회계 영향을 완전히 제거하고 난 뒤의 적정주가 간의 차액을 개별적으로 인정해 손해액을 산정하라"며 2심 재판부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소송이 마무리되기까지 8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분식회계와 관련해 손해 인과관계 등에서 합리적 기준을 사실상 처음으로 제시한 판결을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대우전자 분식회계 소송은 국내에서 가장 대표적인 집단소송으로 꼽힌다.
당시 사건을 대리해 피해자들을 구제한 법무법인은 대형로펌이 아닌 이름조차 생소했던 법무법인 한누리였다.
한누리는 주로 증권·금융분야의 피해자들을 대리해 가해자인 기업과 금융기관, 회계법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업무에 특화된 부띠크 로펌으로 지난 2000년 7월에 설립됐다.
한누리는 국내 최초로 3부자(父子)가 세운 로펌으로 전 대법관인 김상원 변호사가 고문을, 두 아들인 김주현 변호사와 김주영 변호사가 로펌의 대표를 각각 맡고 있다. 증권·금융 소송은 김주영 대표가 팀을 꾸려 전담하고 있으며, 김주현 변호사는 일반 송무 사건을 담당한다.
한누리는 설립 초기부터 주주·투자자 소송 전문을 표방했다. 아직도 변호사 10여명에 불과한 소형 로펌이지만 지난 15년간 주요 사건을 대부분 승소로 이끌며 대형 로펌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증권·금융 소송의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설립 초기에 맡은 대우전자 사건을 비롯해 수천명의 소액주주들을 대리해 수백억원의 배상을 받아낸 현투증권공모사기사건과 재벌총수를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해 수백억원의 배상 판결을 이끌어 낸 LG석유화학사건 등 한누리가 승소 판결을 이끌어 낸 사건은 줄잡아 수십건에 이른다.
증권·금융소송은 거의 모든 입증자료를 해당 기업에서 갖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공개된 자료만으로 혐의를 입증하지 못하면 패소하는 위험이 항상 뒤따른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증권·금융 전문 로펌으로 자리매김하며 굵직굵직한 사건을 승소로 이끌 수 있었던 이유는 관련 분야에 대한 남다른 전문성을 갖췄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김주영 대표의 경력만 살펴봐도 한누리의 강점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지난 1997년 우연히 신문에서 한보그룹에 부실여신을 제공한 제일은행을 상대로 참여연대가 소액주주운동을 벌인다는 기사를 본 뒤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을 그만뒀다. 이후 회사법 전문 변호사로서 주주총회의 운영과 경영판단의 법칙 등 회사법의 핵심에 해당하는 사안들을 다뤄보고 싶은 마음에 소액주주운동을 벌이던 참여연대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
참여연대에서 활동하면서 회사로부터 피해를 본 소액주주들 권리를 옹호해 줄 전문변호사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경영진의 부실경영과 주가조작, 분식회계로 인해 피해를 본 사건들을 집중적으로 맡으며 이 분야 전문변호사로 거듭났다.
공정거래위원회 규제개혁심의회와 정보공개심의회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전영준 변호사, 서울지방변호사회 재산관리사업회 운영위원을 맡고 있는 송성현 변호사 등 김 대표와 함께 일하는 변호사들 역시 전문성을 바탕으로 집단소송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김주영 대표는 "증권 금융사건에서의 원고대리라는 기존의 영역에서도 아직 못 하고 있는 일이 수두룩하다"며 "이러한 분야를 더욱 발전시킬 생각"이라고 밝혔다.
He is
△1965년 서울 △영동고등학교, 서울대 법대 졸업 △사시 28회(사법연수원 18기) △1992년 법무법인 김앤장 변호사 △1999년 증권거래소 규율위원회 △2000년 법무법인 한누리 대표 △2001년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소장 △2003년 공정거래위원회 경쟁정책 자문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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