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 바지를 살 때 걱정거리 중 하나가 몸 사이즈가 변할 때다. 줄자로 꼼꼼히 재는 서양식 계산으로 처음에는 만족감을 느끼지만 어쩌다 몸이 불거나 빠지면 쓸모없는 천 조각으로 전락하는 게 다반사다. 이럴 때 그리워지는 게 핫바지다. 넉넉한 허리춤과 펑퍼짐한 다리 둘레. 옷에 몸을 맞추지 않아도 되니 살이 쪄서 또는 키가 커졌다고 고민할 필요가 없고 꼭 죄지 않으니 일하기도 그만이다. 여유가 주는 편안함과 융통성. 핫바지만의 매력이다.
△핫바지는 원래 솜을 넣은 바지로 조선시대에는 왕의 혼례식 때 갖출 예복 중 하나로 이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무식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놀리어 이르는 말'이라는 뜻이 첨가됐고 해방 이후에는 '도민증' '엽전'등과 함께 시골사람을 얕잡아 보는 의미로 쓰였다. 겉보기 번지르르하고 윤이 나는 양복에 맛을 들인 도시 신사와 식자층의 눈에는 아마도 핫바지가 무지랭이 촌것이나 입는 것으로 비춰졌기 때문일 터. 최고통치권자까지 애용했던 우리 문화가 천한 것으로 취급 받는 시대의 비극이다.
△핫바지는 정치적 함의를 가질 때 극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1995년 등장한 그 유명한 '충청도 핫바지론'이 단적인 예. 한 지방지에 김윤환 당시 민주자유당(민자당) 사무총장이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창당 준비 중이던 김종필씨를 겨냥 "충청도 사람이 핫바지냐"라고 말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JP를 비롯한 자민련은 "경상도 사람들이 충청도 사람들을 핫바지라고 한다"며 지역 감정에 불을 붙였고 결국 민자당은 6월 지방선거와 이듬해 총선에서 참패의 쓴맛을 봐야 했다.
△핫바지가 또 등장했다. 이번에는 국정감사에서다. 증인으로 나온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대선 개입의혹에 대해 "국민들이 판단할 것"이라고 답변하자 한 여당 의원이 "우리가 핫바지냐"라고 발끈했다고 한다. 국회가 얼마나 우습게 보였으면 피감기관장이 이런 발언을 할 수 있을까. 국민의 대표는 안중에도 없는 보훈처장도 심각한 문제지만 국감의 위신을 떨어뜨린 의원들도 반성할 대목이다. 꼭 끼는 양복처럼 정쟁의 틀 속에 갇히기 보다 핫바지같이 융통성 있는 정치인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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