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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패션업체인 이랜드의 중국 본사 직원이 상하이의 유명 번화가인 신티앤띠에서 사복 경찰을 카메라로 찍다가 잡혀가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사연은 이랬다. 중국 이랜드 패션 연구소 직원이 유행 의상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해 시내 중요 패션거리를 찾아가 보행객의 의상을 사진에 담는데 그날 따라 하필 눈에 띄는 복장을 한 주인공이 알고 보니 민간인 차림을 한 경찰이었던 것이다.
상하이에 본사를 두고 있는 중국 이랜드는 베이징의 유명 쇼핑ㆍ상점가인 슈마오티앤지에 등 중국 전역의 주요 도시 패션ㆍ카페 거리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잠재 고객의 의상을 수집하고 설문조사 방식 등을 통해 미래의 유행 의상을 파악하고 있다. 이 같은 데이터는 200여명이 일하는 디자인 연구센터로 보내져 새로운 의류 브랜드 출시의 산파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이랜드 제품은 중저가로 인식되고 있지만 중국에서는 고가 브랜드로 통한다. 상하이 명소 빠바이빤 백화점의 의류 매장에만 로엠, 에블린 등 이랜드 브랜드 코너만 무려 13개가 있다. 스코필드 등 중국에서 만든 자체 브랜드도 있고 같은 셔츠라도 중국 가격이 한국의 3~4배에 이른다. 상하이 등 동부 연안 도시는 물론이고 충칭, 청두 등 중서부 지역에서 새로 생기는 백화점마다 먼저 이랜드에 입점해달라고 한다고 한다.
중국을 수출 전진기지로서 인식하고 저가 노동력만 바라보고 진출했던 한국의 수많은 기업들이 중국의 성장모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현실에서 이랜드의 성공은 눈여겨볼 만하다. 한국 대기업 중 상당수의 의류사업 부문은 중국 진출 초기에 한국에서 처리하지 못한 재고물량을 중국에서 팔겠다는 안이한 방식으로 접근했다가 흐지부지 사업을 접었다. 이랜드는 지난 1990년대 진출 당시부터 철저한 현장조사를 통한 현지화 전략을 구사했다. 동시에 일찌감치 중국 중산층과 부자들의 내수 소비 잠재력을 간파하고 원단 소재부터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고급 브랜드화 정책에 방점을 찍었다.
중국은 지난해부터 시작한 제12차 5개년 경제개발 계획에서 내수시장 활성화라는 성장모델 구조 전환과 산업구조 고도화를 위해 각 부문의 중국 브랜드 파워를 키우는 것이 긴요하다고 적시한 바 있다. 대표적 예로 하이얼, 메이디 등 중국의 주요 가전업체는 과감한 기술 투자와 마케팅 강화를 통해 한국을 포함한 선진 외자업체를 맹추격하고 있다. 세탁기, 냉장고 등 백색 가전에서는 이미 확실한 수위 시장점유율을 확보했고 2단계로 브랜드 이미지 제고 단계에 들어섰다. 이제 중국에서 기술력 확보는 기본이고 내수시장 공략을 위한 브랜드 이미지 제고라는 치열한 고민이 있어야 승산이 있다.
이랜드는 사업적으로만 성공한 게 아니다. 사회적 책임 기업으로서 1990년대 후반 중국 진출 이래 매년 순익의 10%를 불우 청소년 장학금 등으로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수여하는 최고의 사회 기여상인 중화자선상을 지난해까지 2년 연속 수상하기도 했다. 제2, 제3의 이랜드 기업이 중국에서 탄생하기를 기대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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