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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28일 태국 방콕의 동쪽 지역인 수쿰빗가(街)에 위치한 문구 제조업체인 랜서펜 공장은 아침부터 굵은 땀방울을 흘리는 근로자들과 드나드는 트럭들로 분주했다. 1963년 창립 이래 전세계에서 해마다 수백만개의 볼펜과 연필ㆍ지우개 등을 팔아치우는 이 회사는 태국 정부가 수여하는 수출훈장을 받을 정도로 유명한 기업이다. 하지만 탄탄대로를 걷던 이 회사의 앞날에 요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잉락 친나왓 태국 총리가 최저임금 인상 공약을 밀어붙이고 있는데다 물가까지 급등하면서 수익성이 악화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포 아나빌 이사는 "지금 해외에서 신규 공장 부지를 물색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임금 상승으로 순익이 떨어지면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낮은 곳을 찾아 공장을 옮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 초저가 임대주택 공급, 저소득자 신용카드 발급 등 각종 포퓰리즘 정책을 앞세운 푸어타이당이 정권을 차지하면서 태국 경제의 성장엔진이 급속히 식어가고 있다. 당장 잉락 총리 취임 이후 물가 급등이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장기적으로는 경제 체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최근 들어 잇달아 하향 조정되고 있다. 태국 SCB증권은 최근 "올해 4.1%, 내년 4.85%로 각각 추정했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낮출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꺼져 가는 성장동력=잉럭 총리의 각종 공약 중에서도 비난이 집중되는 것은 현재 일당170~210밧 수준인 최저임금을 300밧으로 일괄 상향하는 정책이다. 관광산업과 농업 비중이 큰 태국 경제의 특성상 인건비 상승은 곧바로 성장률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 공약에 강력 반발하던 재계는 정계와 노동계의 압박에 결국 백기를 들기 시작했다. 방콕포스트에 따르면 정유업체인 방착 페트롤륨은 내년 초부터 노동자들의 임금을 300밧으로 일괄 상향한다고 7월24일 밝혔다. 어누선 생님누알 대표는 "근로자들이 월급 인상분만큼 더 효율적으로 일할지 의문"이라며 "인건비를 충당하기 위해 기름 1리터당 7사땅(100분의1밧)을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생산비 상승 부담은 결국 제품 가격을 밀어올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방콕에서 만난 한 대학교수는 익명을 요구하면서 "서구 선진국의 임금이 높은 이유는 생산성이 그만큼 높기 때문"이라며 "교육 등 노동 효율을 올리는 방안에 투자하지 않고 임금 인상에 돈을 쏟아붓는 것은 전형적 포퓰리즘"이라고 지적했다. 2,100명가량의 직원을 고용하며 인력 교육 및 알선 업체를 운영하는 정창관 맨테크 대표 역시 비슷한 고민을 토로했다. 태국 정부가 기업 수익을 보전해주기 위해 법인세 인하를 추진하고 있지만 '언발에 오줌 누기' 수준에 그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정 대표는 "태국에서는 각 기업이 순익의 30%를 법인세로 내야 한다"며 "임금이 올라 순익이 떨어지면 법인세를 줄여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말했다. 새 먹을거리를 발굴해 고용을 늘리는 기업가 정신이 퇴색하는 징조도 곳곳에서 감지된다. 방콕에서 기계무역을 하는 칠럼포 웡와이윗 사장은 "기업을 운영하는 것보다 부동산 투기에 나서는 게 낫다는 기업인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나 역시 부동산 투자 비중을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태국 경제에 '퍼펙트 스톰' 온다=일각에서는 글로벌 경기침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급증하는 인건비 부담까지 떠안게 된 태국 경제가 '퍼펙트 스톰(여러 악재가 겹치는 최악의 위기)'을 맞게 될 것이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당장 직면한 악재는 인플레이션 압력이다. 올해 초만 해도 2~3%를 유지하던 태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4월에 4%를 돌파한 후 7월까지 4개월 연속으로 4%를 넘는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태국중앙은행(BOT)의 쁘라산 뜨라이랏보라꾼 총재는 "물가 상승이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며 "지금은 소비 증진에 나설 때가 아니라 재정 지출을 건전화하고 인프라 투자에 집중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호소하고 있지만 잉락 총리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공약들을 강행하고 있다.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BOT가 올 들어 여섯 차례나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기업들의 자금 사정도 나빠졌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임금 상승에 따른 원가 부담 ▦인플레이션에 따른 재료비 상승 ▦자금 조달 금리 충당 등 갖가지 악재에 동시 다발적으로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방콕의 한 제조업체 사장은 "지금보다 물가가 오르면 근로자들이 추가 임금 인상을 요구할 것"라며 "돈 빌리기가 까다로워져 빚을 내 일당을 주기도 어려운 형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달러화가 흔들리며 태국 밧화가 강세로 돌아선 것도 수출 기업들에는 부담이다. 6월 말 달러당 31밧 수준이던 환율은 7월26일 현재 29.68밧까지 떨어졌다가(밧화 강세) 최근에는 30밧선을 맴돌고 있다. 수출 경쟁력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태국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는 1997년 태국을 휩쓴 경제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마저 나온다. 때문에 태국 경제가 아직까지는 괜찮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지금이라도 푸어타이당이 포퓰리즘 공약을 철회하거나 일부 정책을 현실에 맞게 수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힘을 얻고 있다. 칠럼포 사장은 "태국이 일류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을지 여부가 바로 이 순간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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