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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개방과 고령화라는 어려운 상황에서 구조개선 없이는 한국 농업의 미래를 그릴 수가 없습니다."
지난 4일 정부세종청사 집무실에서 만난 이동필(사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말에서는 위기감이 강하게 묻어났다. 30년 이상의 농촌경제연구원 생활을 거쳐 지난 2년6개월 동안 농업정책을 총괄하는 농식품부를 이끌어온 그다. 누구보다 대한민국 농업과 농촌의 현실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그의 입에서 '위기'라는 진단이 나올 만큼 어려운 상황에 부닥친 것일까.
"늙어가는 농촌, 그리고 열리는 시장." 그의 이 한 마디에 우리 농촌의 구조적인 문제가 모두 담겨 있다. 식량안보를 책임져야 할 농업마저 무한경쟁이라는 냉혹한 현실에 내몰려 있는데 인구구조 때문에 케케묵은 구조를 뒤바꿀 만한 동력을 찾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는 개방화와 고령화가 맞물리면서 위기의 진도(震度)는 점점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장관은 "(지금 이대로는) 10년이 지나면 농사지을 사람도 없다"며 "농업 개방도 지금까지 20여년간 막아왔지만 앞으로 그럴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전환기인 지금 10~20년 뒤를 살아갈 (농업의) 기초를 만들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장관이 꼽은 '진앙지(震央地)'는 어디일까. 바로 인구구조다. 통계청의 '농림어업 조사'에 따르면 2013년 농촌의 60세 이상 인구 비율은 47.8%에 달한다.
농가 인구 두 명 중 한 명이 60세 이상인 셈이다. 고령화로 낮아진 생산성은 고스란히 저소득으로 이어졌다. 이 장관은 "우리 농가가 112만가구 정도인데 농사 규모는 1인당 평균 1.5㏊에 지나지 않을 만큼 영세하다"며 "산업화·도시화 과정에서 농촌에는 고령자만 남게 됐고 기존에 하던 방식으로 농사를 짓다 보니 소득수준도 낮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전체 농가의 평균 소득이 3,400만원으로 도시가구의 60%에 불과한 수준"이라며 "더욱이 연간 매출액이 500만원도 안 되는 영세고령 농가는 60만가구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농가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시장개방에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구조개선도 더뎌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쌀 개방이다. 이 장관은 "우리나라 쌀 의무수입량이 40만9,000톤인데 농민들은 재고 쌀이 130만톤에 이르는데 왜 수입을 하느냐, 밥쌀은 왜 또 가져오느냐고 한다"며 "이게 다 우리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뒤 그만큼 관세화를 늦게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WTO 가입 이후 1년 유예 만에 쌀을 관세화한 대만의 의무수입량은 단 500톤에 불과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2004년까지였던 관세화 유예기간을 10년 더 연장해 올 들어서야 513%의 세율로 관세화를 결정했다. 5만톤에서 시작했던 의무수입량은 그동안 8배나 늘었다.
위기의 농촌을 구하기 위해 이 장관이 구상하는 해법은 '20·30·60만 농가 구조개선 계획'이다. 우선 110여만 농가 가운데 20만을 기업농으로 키워 생산능력을 높이고 30만가구가 소규모 생산뿐 아니라 유통·가공을 아우르는 6차산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개선한다. 이렇게 늘어난 농가소득으로 나머지 60만 영세고령 농가의 사회안전망을 만든다는 아이디어다.
이 장관은 "50㏊ 이상인 들판이 우리나라에 2,800개쯤 있다. 들판 단위로 농사를 짓게 되면 품질을 단일화할 수 있고 생산비는 완전히 떨어뜨릴 수 있다"며 "이렇게 하면 적은 비용으로도 49%에 불과한 식량 자급률을 60%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현 정부 들어 이 같은 '들녘 경영체'를 200개 정도 만들었다"며 "특수작물의 경우 정보통신기술(ICT)로 최적의 환경을 맞출 수 있는 '스마트팜(지능형 비닐하우스 관리 시스템)'을 확산시키려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30만 농가의 6차산업 종사를 위한 규제개선에도 힘을 쏟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하우스 막걸리'다. 소규모 전통주 제조면허 신설은 이 장관이 주도해 올해 세법개정안에 포함됐다. 이 장관은 "술은 흔히 음식의 꽃이라고 할 만큼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이라며 "막걸리를 비롯한 전통주 제조업체가 대략 800개 정도일 만큼 양적 성장은 했지만 아직 질적 성장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마케팅 차원에서 가을쯤 사회 저명인사들과 '국산 와인 독립선언(가칭)'이라는 이벤트도 열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 장관은 농촌경제연구원장 재직시절부터 '규제완화 전도사'로 불렸다. 농업 분야의 덩어리 규제를 풀어야 식품가공 등 관련 산업이 발전하고 농가소득도 살찌울 수 있다는 게 지론이다. 그는 최근 농촌인구 고령화 문제 해결 등을 위해 귀농·귀촌을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적은 비용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임대주택을 더 많이 건설하고 현재 1개소에 불과한 귀농지원센터를 지역 창조경제선터를 활용해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꼭 보존해야 할 농지가 아니라면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자투리 농지를 개발하는 방향으로 농지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이를 위해 현재 관련 농지현황 전수조사를 벌이고 있다. 대통령의 중동 순방 이후 농가의 새로운 먹거리로 떠오른 할랄 시장 진출을 위한 토대도 차근차근 쌓고 있다. 그는 "갑자기 왜 하느냐는 질문도 많지만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시장이 생기는 것"이라며 "전 세계 인구의 16% 정도인 무슬림이 먹는 할랄 시장 규모는 1,910억달러(2012년 기준)에 이른다"고 필요성을 설명했다. 정부는 할랄 식품 국내 기반 구축과 수출확대를 위해 '할랄 식품 발전대책'을 수립한 데 이어 오는 2017년까지 현재 8억6,000만달러 수준인 규모를 2배인 15억달러로 키워나갈 계획이다.
이 장관은 올해 들어 가뭄 등으로 급등했던 농작물 가격이 가을에는 점차 안정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배추는 1년에 네 번 생산하는데 가뭄도 있었고 여름에는 고랭지에서만 재배할 수 있기 때문에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며 "가을이 되면 다시 재배량이 크게 늘어나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파나 양파 가격은 유통구조의 문제로 더 오를 수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장관은 "지난해까지 두 해 연속 양파 가격이 떨어져 평당 350원 정도 수준이 됐다"며 "이 여파로 재배면적이 줄면서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가격급등을 막기 위해 기존 비축분 2만톤에 15만톤을 추가로 수입했지만 유통업자가 물건을 안 내놓으면 가격은 더 오를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 장관은 앞으로 생산자와 지방자치단체가 참여하는 가격안정제도를 정착시켜나가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가격안정제도는 가격 진폭에 따라 시나리오별 정책을 달리하는 제도다. 그는 "가계지출에서 농산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낮지만 식탁물가의 특성으로 국민들은 가격변동에 민감한 편"이라며 "지자체와 생산자단체가 수급조절 역할을 분담해 스스로 가격이 안정되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 He is… △1955년 경북 의성 △1978년 영남대 축산경영학과 졸업 △1981년 서울대 농업경제학 석사 △1991년 미주리대 농업경제학 박사 △2000~2011년 농촌경제연구원 정보관리실장·지식정보센터장·기획관리실장 △2006~2012년 농림수산식품부 규제심사위원장 △2008~2011년 지역발전위원회 지역개발전문위원 △2011~2013년 농촌경제연구원장 △2013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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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농림축산식품부
대담=김정곤 경제부 차장 mckids@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