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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5월18일] KKK단


800만명. 1920년대 중반 KKK단원 수다. 4만여 명이 워싱턴 시가를 행진한 적도 있다. 19세기 말 소멸됐던 백인우월주의자 집단 KKK는 어떻게 살아났을까. 1차 대전을 거치면서 형성된 국가주의ㆍ전체주의 물결 속에서 두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첫째는 최초의 흥행대작인 영화 ‘국가의 탄생’. 수려한 영상으로 유명한 이 영화는 KKK를 정의의 십자군으로 그렸다. 백인 처녀가 흑인 병사의 겁탈을 피하려다 추락사하는 장면에 남부인들은 치를 떨었다. 영화 개봉 7개월 만인 1915년 10월, 윌리엄 시먼스(William Simmons)가 2기 KKK단을 출범시켰다. 미국ㆍ스페인 전쟁 참전용사, 전도사라는 전력으로 ‘대령’ ‘목사’로 불렸던 35세의 시먼스가 이끄는 KKK단은 1920년 초까지 수백명에 불과했으나 광고전문가 에드워드 클라크를 영입한 뒤부터 급팽창하기 시작했다. 클라크의 비결은 피라미드식 조직관리. 단원모집책에게 신입회원의 가입비 10달러 중 4달러를 떼어줬다. 신입회원이 모집책으로 성장해도 애초 모집책은 일정액을 받을 수 있었다. 모집책은 확실한 호구지책으로 자리잡고 KKK단원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KKK 부활의 두번째 요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돈. 시먼스의 영화는 오래 가지 못했다. ‘흑백 평등은 공산당’ ‘히틀러와의 협조’를 주장하다 2차 대전이 터져 된서리를 맞았기 때문이다. 시먼스의 사망(1945년 5월18일, 65세) 무렵 KKK단은 종적을 감췄으나 최근 다시 살아나 독일ㆍ오스트레일리아까지 번졌다. 다른 인간에 대한 우월감과 증오심은 남의 얘기가 아니다. 아들의 복수를 위해 조폭을 동원한 사적 린치를 가하는 빗나간 부정(父情)에서 인터넷에 출몰하는 악플러까지. KKK와 닮은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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