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저녁자리에서 건설사에 근무하는 한 지인을 만났다. 술이 몇 순배 돌자 그는 몇 년 전 주택 시장 호황기 건설사들이 잘나갔던 기억을 자랑삼아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동석했던 다른 지인이 그의 말에 제동을 걸었다. "그러니까 건설사들이 지금 다 망하고 있는 거야."
국민 대부분이 현재 건설사의 위기를 바라보는 시각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건설업체들이 부도를 맞거나 워크아웃 또는 기업회생절차(옛 법정관리)를 시작하는 것이 결국 주택 경기 호황에 편승해 흥청망청한 건설업체 자신들의 잘못이라는 생각이다.
최근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중소 건설사들의 일시적인 자금난 해소를 위해 금융권에 협조도 당부하겠다"고 밝혔다. 금융권 주도의 건설업계 구조조정에 실효성 문제가 제기되자 정부가 나서겠다는 의지다.
실제로 채권은행들이 자신들의 채권 회수에만 몰두해 건설사 워크아웃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자산 매각에만 열을 올리고 회생을 위한 신규 사업을 외면해 건설사의 체력을 오히려 약화시킨 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상당수 국민들이 건설업체에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인식을 털어내고 국민의 공감대를 얻기 위해서는 회사를 어렵게 한 오너들이 얼마나 자기 희생을 통해 회사를 살리려 노력했는지 여부도 선별 기준의 하나가 돼야 한다.
얼마 전 법정관리에 돌입한 한 건설사 오너는 직원들에게 미분양을 떠넘겨 법적으로 문제가 될 듯하자 경기도 모처에 있는 자신의 땅을 팔아서 해결해주기로 했다고 한다. 고마운 일이기는 하지만 정작 이를 받아들이는 직원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재산이 있었다면 왜 회사가 어려울 때 그 땅을 팔아서 보탬이 되지 않았냐는 것이다.
건설업체의 유동성 지원은 잘못된 경영으로 회사를 어렵게 한 건설사 오너를 위한 것이 돼선 안 된다. 열심히 회사를 믿고 일한 직원들, 수백여개에 달하는 협력업체, 그리고 이삿짐센터, 중개업소, 인테리어 업체 등 후방산업에 종사하는 서민들을 살리기 위한 것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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