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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국가신용등급이 10년 만에 투자부적격으로 떨어질 위기에 처했다. 최근의 통화불안 사태에 기인한 것으로 러시아 당국은 더 이상의 상황악화를 막기 위해 제한적 형태의 자본통제에 사실상 돌입했다.
국제신용평가기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23일(현지시간) 러시아를 '부정적 관찰 대상'에 편입시키며 "향후 90일 내 러시아 신용등급이 내려갈 가능성이 최소 50%"라고 밝혔다고 외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S&P는 이번 조치에 대해 "최근 러시아 통화(루블화)의 유동성이 급격히 악화됐고 이로 인해 금융 시스템도 매우 취약해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S&P의 러시아 신용등급은 현재 BBB-로 투자부적격 단계 바로 위다. 즉 S&P의 경고가 현실화될 경우 러시아는 지난 1998년 디폴트(채무불이행)의 영향으로 투자부적격 판정을 받았다가 2005년 1월 말 이를 벗어난 후 또다시 정크 수준으로 전락하게 된다. 무디스와 피치의 러시아 신용등급은 투자부적격보다 두 단계 위인 Baa1, BBB다.
러시아 은행들의 신용등급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무디스는 이날 보고서를 내고 "향후 2년간 러시아 경제가 당초 전망보다 훨씬 더 안 좋아질 것이 확실하고 이에 따라 금융기관들도 심각한 압력에 직면할 것"이라며 러시아 은행 중 최대 16곳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미 CNBC방송이 보도했다.
무디스 보고서는 이날 러시아 중앙은행이 파산 위기에 직면한 중위권 은행 내셔널뱅크트러스트(NBT)에 대해 300억루블(약 6,000억원) 상당의 구제금융 조치를 전격 단행한 직후에 나왔다. 러시아에서 15번째로 가계예금을 많이 예치하고 있는 NBT는 최근 루블화 폭락에 따른 대규모 예금유출로 몸살을 앓아왔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서방권의 경제제재와 최근의 유가하락이 야기한 통화불안 사태가 러시아 금융 시스템을 붕괴 직전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러시아 당국은 더 이상의 사태악화를 막기 위해 제한적 수준의 자본통제에 돌입했다. 주요 국영 수출기업 5곳에 현재 보유한 외화를 매각할 것을 지시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보도했다. 해당 기업은 러시아 대표 에너지 업체인 가스프롬과 로스네프트·자루베즈네프트와 알로사·크리스털 등 다이아몬드 업체 2곳이다. 이들은 내년 3월1일까지 현재의 외환보유량을 올 10월 초 수준으로 낮춰야 하며 진행상황을 일주일에 한번씩 중앙은행에 보고해야 한다.
현지 언론은 이들 기업이 앞으로 매일 총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가량을 매각해야 할 것으로 추산했다. FT는 "이번 조치는 러시아 당국이 도입하지 않겠다고 공언해온 자본통제의 '순화된(soft)' 형태"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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