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들이 매출 3,000억원의 덫에서 빠져나올 수만 있다면 제2, 제3의 삼성전자가 나올 것입니다. 중견기업이 기업가 정신을 갖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적 배려가 절실한 시점입니다." 윤봉수(76) 중견기업연합회 회장은 "흔히들 중견기업을 한국 경제의 허리라고 말하지만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보니 대기업으로 커나가는 사례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며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ㆍ대기업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조세와 금융, 연구개발(R&D) 등의 분야에서 중견기업을 위한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견기업을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끼인 '샌드위치 신세'로 비유하면서 중견기업 전용R&D자금 등을 투입해 신성장사업에 적극 진출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 회장은 "중견기업은 명실상부한 글로벌 히든 챔피언으로 도약할 수 있는 성장잠재력을 갖추고 있다"며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정책으로 중견기업의 사기를 끌어올려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견기업이라고 하면 아직 정의부터 분명하지 않은 듯합니다. 중견기업의 범위를 어떻게 봐야 합니까. ▲중소기업으로 시작해도 규모가 커지면 좋든 싫든 중견기업으로 넘어와야 합니다. 또 중견기업이 크면 자동적으로 대기업으로 성장해가야 나라 경제가 탄탄하게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중소기업의 범위가 너무 애매했고 법적으로 '중견기업'이라는 섹터 자체도 없는 실정입니다. 지난 3월 중소기업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중소기업의 범위가 매출액 1,500억원, 자기자본 500억원 미만으로 정해졌습니다. 이 기준을 넘어가는 기업은 법적으로 중소기업을 졸업해야 하며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소속되거나 자산 총액이 5,000억원 이상인 기업도 중소기업에서 제외됩니다. 현재 중견기업연합회 회원 수가 516개입니다만 새로운 기준에 따르면 2,500개 정도의 기업들이 추가로 중견기업에 진입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우리나라의 중견기업층이 외국에 비해 두텁지 못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만. ▲중견기업들은 특화된 분야에서 전문으로 성장해온 기업들이 많습니다. 게다가 정부가 혜택을 안겨주는 중소기업이나 풍부한 자금력과 인력을 갖춘 대기업과 비교할 때 중견기업은 성장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국제경쟁에서는 뒤떨어지고 거기에다 중견기업을 위한 정책도 없다 보니 선진국들에 비해 중간기업군의 비중이 낮은 '호리병형' 구조가 된 것입니다. 주변을 보면 중소기업에 적용되는 혜택과 대기업으로 성장했을 때 받는 경영상의 부담 때문에 성장을 아예 포기하는 기업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책과 제도가 뒷받침된다면 성장할 잠재력을 가진 중견기업들은 많이 있다고 봅니다. 지금도 중견기업 가운데는 연 매출 1조원을 오가는 탄탄한 기업들이 있습니다. 이런 기업들이 발전해 매출 10조원대의 기업이 자꾸 나와야 합니다. 그렇게 10조원대 기업이 10개만 나오면 100조원, 즉 우리 경제에 삼성전자만 한 기업이 또 하나 탄생하는 효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선진국과 비교할 때 우리 중견기업의 경제적 위상은 어떻습니까. ▲중간 규모의 기업군이 미국이나 독일 등 선진국에 비하면 크게 부족한 상황입니다. 미국의 경우 중견기업 비중이 전체 기업의 11%, 독일에서는 2%가 넘는데 우리나라는 0.2%에 불과합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은 있는데 가운데가 텅 비어 있는 기형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죠. 독일만 해도 미텔스탄트라고 불리는 글로벌 중견기업이 독일 수출의 일등공신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일본 중견기업도 대기업과 대등한 파트너십을 맺고 독립형 기업군으로 탄탄한 기반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중견기업으로 진입했다가 성장을 포기하고 중소기업으로 되돌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현실적으로 매출액 3,000억원 안팎의 중견기업은 성장통을 겪게 됩니다. 중견기업의 평균 업력이 28년, 평균 매출이 2,700억원 정도라고 하는데 이 정도 되면 기업은 시장에서 일정한 위치를 점하고 무리하게 신사업을 벌이지 않아도 현상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장 저부터도 좋은 사업 아이템이 있다고 해도 지금의 사업까지 흔들리는 리스크 부담을 피하기 위해 모험을 하기보다는 지금 상태로 회사를 끌고 가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성장의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문제는 이런 기업들에 어떻게 성장 동기를 유발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새로운 시장이 꼭 신성장동력 사업이 아니라도 중견기업이 잘 할 수 있는 시장에서 도전정신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정부가 성장 모멘텀을 유인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합니다. -정부 차원에서도 중견기업 육성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현재 각 부처와 연구기관에서 마련한 내용이 취합되고 있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연합회도 상반기에 지식경제부의 중견기업 지원정책 수립과정에 참여해 이 과정에서 중견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정부에 건의하고 정책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특히나 중견기업법 제정은 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중견기업이라는 법적 용어 자체가 없지만 법 제정을 통해 중견기업이라는 섹터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 우리나라 산업구조 자체의 변화와 함께 앞으로 5년, 10년 뒤는 물론 다음 세대까지도 국가발전에 크게 이바지할 기반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중견기업을 육성하자는 데 반대하는 곳은 없을 것인 만큼 실행부처의 의지만 있다면 법 제정도 잘 될 것이라고 봅니다. -중견기업 입장에서는 정부의 정책이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춰야 된다고 보십니까. ▲중견기업에 대해 직접 정책자금을 풀라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사기를 올려주고 성장동력을 부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달라는 것입니다. 중견기업들은 이미 중소기업 시절에 지원 받은 부분이 있고 또 지원이라는 부분 때문에 기업이 크려고 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게 되므로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중견기업들은 조세나 금융ㆍR&Dㆍ인력 등의 경영환경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특히 R&D에 대한 정책적 배려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매년 기업에 대한 R&D 예산이 총 5조원에 달하는데 이중 500억원만 중견기업 몫으로 돌려줘도 기술발전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과거에도 중견기업지원특별법이 발의됐다가 중소기업계의 반발로 무산된 적이 있었습니다. 중소기업과의 입장차이를 해소하는 것도 큰 과제일 텐데요. ▲정부 정책이 워낙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책에 집중되다 보니 중견기업도 그럴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반발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견기업에 대한 정책은 직접적 지원이 아니라 기업의 성장을 독려하는 계기를 마련해 대기업으로의 연착륙을 유도하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중소기업을 대표하는 단체인 중소기업중앙회와도 협조적인 관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중소기업이 성장해 중견기업으로 편입되는 것이고 또 중소기업에 대한 국고지원을 줄이지 않으면서 중견기업을 육성하자는 것이기 때문에 두 단체 간 의사소통이 잘 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중견기업이 활성화되지 못한 데는 정책 부재 못지않게 중견기업 스스로의 자성도 부족했던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중견기업이 보다 큰 기업으로 성장하고 경제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기업가 정신, 모험을 할 수 있는 정신이 살아나야 합니다. 기업인들은 스스로 한국 경제의 중심이 되고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비전과 사명감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중견기업들이 스스로의 역할을 정립하고 제도적 뒷받침만 이뤄진다면 우리나라에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히든 챔피언'이 속속 탄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약력 ▲1934년 황해 곡산 ▲1958년 서울대 법학과 ▲1965년 남성 대표이사 ▲1970년 나스코 대표이사 ▲1976년 남성텔레콤 대표이사 ▲1983년 전자정보통신 산업진흥회 부회장 ▲1999년 중견기업연합회 부회장 ▲2000년 무역협회 부회장 ▲2003년 공정거래위원회 자문위원 ▲2004년 중견기업연합회 회장
■尹회장은 분기마다 해외시장 시찰, 고령에도 열정적 경영활동 중견기업 입법화 추진위 구성, 권익 보호·위상 강화에 앞장 윤봉수 회장은 우리나라 전자산업의 태동기인 지난 1965년에 오디오ㆍTV 생산업체인 ㈜남성을 설립해 이후 45년간 한 우물을 파며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해온 우리나라 수출의 역군이다. 윤 회장이 일군 ㈜남성은 현재 국내 기업 중 거의 유일하게 미국 시장에서 자사 브랜드로 파이오니아ㆍJVCㆍ파나소닉 등 일본의 거대 기업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수출 전문기업이다. 70대 중반의 고령에 달한 지금도 분기마다 미국과 중국ㆍ일본 등 해외시장을 직접 둘러볼 정도로 사업에 정력을 쏟는 그는 이제 막 경영의 길로 접어든 젊은 창업세대에게 "일단 손을 댔으면 한 우물을 파라"고 조언한다. 깊숙하게 파 내려가다 보면 어떻게든 성과가 나오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이는 그가 회사 직원들에게 늘 강조하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사업을 하다 보면 기복이 있게 마련이지만 밑바닥에서도 끝까지 버티고 지푸라기라도 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면 다시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반세기에 육박하는 오랜 세월 동안 기업을 경영하면서 끝까지 고수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같은 '집념'이다. 경영에 대한 열정은 자신의 사업체뿐 아니라 정책의 사각지대에서 고군분투하는 중견기업계 활성화의 열정으로 이어졌다. 윤 회장은 2004년 이래 5년째 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을 지내면서 중견기업의 위상구축에 힘을 쏟아왔다. 윤 회장의 적극적인 회원 확대정책과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 회원 간 정보교류 활성화 등을 통해 중견기업연합회는 현재 회원 기업 수 517개사에 달하는 명실상부한 중견기업의 대표 경제단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윤 회장은 또 지난해 '중견기업 입법화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지식경제부의 중견기업 지원정책 수립과정에 적극 참여하는 등 중견기업군의 실질적인 권익보호에 나서고 있다. 신경립기자 klsin@sed.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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