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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7월18일] 로버트 후크
입력2006-07-17 16:06:02
수정
2006.07.17 16:06:02
'영국의 다빈치.' 로버트 후크(Robert Hooke)에게 붙는 수식어다. 화학과 물리학ㆍ천문학ㆍ생물학ㆍ기계역학에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1635년 7월18일 태어난 후크는 학교에 다닐 수 없을 만큼 약해 목사인 아버지에게 가정교육을 받으며 그림에 뜻을 품었다.
미술을 공부하려 런던에 도착한 13세의 소년은 곧 항로를 바꿨다. 천재성을 눈여겨본 주변의 권고로 옥스퍼드대학에서 천문학과 화학을 공부한 후 로버트 보일의 조수로 일하며 공기 펌프를 만들었다.
최고 시설을 자랑하던 보일과 왕립학회의 실험실에서 후크는 평생 동안 업적의 기초를 닦았다. 빛의 파동설 연구와 시계 개량, 풍력계, 실용적 유니버설 조인트(동력전달장치) 발명이 모두 실험실에서 이뤄졌다. 실험 노트는 '고체의 변형은 힘에 비례한다'는 후크의 법칙, 목성의 회전 발견, 오리온좌 관측, 화석연구로 채워졌다.
1666년 런던 대화재 직후에는 도시재건의 측량ㆍ설계 책임을 맡아 그리니치 천문대와 병원 대학건물 등 수많은 건축물을 남겼다. '새시'라고 부르는 창문틀도 그가 원조다.
후크를 유명인사로 만든 것은 현미경. 세포의 존재를 처음 찾아내 라틴어로 작은 방이라는 뜻의 '셀(Cell)'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벼룩 등의 정밀묘사가 들어간 책자 '마이크로그래피아(Micrographia)'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며 유럽의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랐다. 43세 젊은 나이에 왕립학회장에 선출된 것도 이런 공적 덕이다.
1703년(68세) 사망할 때까지 후크는 과학혁명을 주도했지만 금세 잊혀졌다. 왕립학회장에 뽑힌 뉴턴은 경쟁자였던 후크의 초상화며 연구보고서를 없애버렸다. 경과와 관계없이 뉴턴은 1등으로 굳어졌다. 역사는 2등을 기억하지 않는다. 오직 1등만을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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