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4년(5월 3~7일) 요한 바오로 2세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에 체류한 기간에 북한의 대표적 신문인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교황 방한을 언급하거나 종교에 관한 글을 싣지도 않은 채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했다. 남북관계와 관련해서도 특별히 긴장을 조성하지 않으며 차분한 움직임을 보였다.
요한 바오로 2세가 처음 방한한 다음 날인 1984년 5월4일은 후야오방(胡耀邦)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평양에 도착한 날이기도 하다. 후 총서기는 김일성 주석의 초청으로 방북, 그해 5월11일까지 8일간 북한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노동신문은 그해 5월4일 사설로 “조중친선은 피로 맺어진 불패의 친선”이라고 강조하는 등 당시 후 총서기의 북한 내 활동과 북중친선을 부각한 글로 연일 지면을 채웠다.
◇ 1989년(10월 5~8일) 요한 바오로 2세
요한 바오로 2세가 두 번째 방한했을때 1989년 10월4일 노로돔 시아누크 당시 캄보디아 국왕(2012년 10월 사망)이 평양에 도착했고 이틀 뒤 김 주석과 만났다. 공교롭게도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을 방문하기 하루 전날 시아누크 국왕이 북한에 들어간 것이다. 시아누크 국왕은 1970년대 초 북한에 망명했을 당시 김일성 주석이 거처를 마련해주는 등 두 사람은 생전에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다.
◇ 2014년(8월 14~18일) 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첫날인 14일에는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강조하면서도 원산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300㎜ 방사포로 추정되는 단거리 발사체 3발을 발사하는 다소 이중적 모습을 보였다. 방사포로 추정되는 단거리 발사체 3발은 프라치스코 교황이 탑승한 전세기가 서울 도착하기 직전인 이날 아침 9시 30분과 9시 40분, 9시 55분 등 3회에 걸쳐 발사됐다.
/디지털미디어부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