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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맨해튼 남쪽에 소재한 직업학교인 플래티런스쿨. 지난 16일(현지시간) 이곳을 찾았을 때는 넓은 사무실에서 수십명의 학생들이 대여섯명씩 모여 각자 팀이 만든 프로그램에 대한 토론에 열중하고 있었다. 부대시설이 거의 없어 썰렁해 보였지만 뉴욕에서 가장 유명한 혁신 직업학교 가운데 하나다.
이 학교는 웹프로그래밍, 휴대폰 애플리케이션 등 3개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응시자의 입학률은 10% 미만으로 미 아이비리그 등 명문대보다 경쟁률이 치열하다. 대신 불과 12주간의 혹독한 코스를 완주하면 기회의 창이 열린다. 2012년 설립 이래 졸업자 150명 가운데 98%가 석달 안에 정규직을 얻었고 평균 초봉도 7만5,000달러에 이른다. 상대적으로 취업이 어려운 여성·흑인·고졸자의 비중이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적표다.
성공비결은 오프라인 교육의 장점과 학생 자율성을 최대화한 점이다. 아비 플롬바움 플래티런스쿨 학장은 "학생들은 입학 전에 150시간의 사전작업을 끝낸 뒤 입학 후에는 12주 동안 하루 종일 함께 토론하고 공부한다"며 "일주일 동안 불과 2~3개 수업을 듣는 정규대나 학생들 간의 상호작용이 부족한 온라인 교육보다 효율성이 훨씬 높다"고 설명했다.
교육과정도 급변하는 정보기술(IT) 환경과 기업의 인력수요에 초점을 맞췄다. 또 음악·금융 등의 전공자들도 자신의 특기와 창조성을 살릴 수 있도록 했다. 애덤 엔버 플래티런스쿨 최고경영자(CEO)는 "미 교육 시스템은 산업 변화와 유능한 엔지니어의 수요를 충족하지 못한다"며 "학생들이 새로운 시각으로 IT 산업을 더 다양화하도록 하고 아이비리그에 버금가는 수준의 직업학교가 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 학교의 성공요인에는 뉴욕시의 맞춤형 지원도 빼놓을 수 없다. 플래티런스쿨이 임대료 비싼 맨해튼에 사무실을 마련하는 데 뉴욕시는 25만달러를 지원했다. 올해 초에는 이 학교와 계약해 22주 코스의 무료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1,200여명의 지원자 가운데 28명이 선발됐고 과정을 수료한 후 대부분이 평균 연봉 7만달러의 정규직이 됐다.
뉴욕시가 마이클 블룸버그 전 시장 시절부터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해 내놓은 벤처 지원책이 속속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현재 뉴욕은 보스턴 등 경쟁자를 제치고 실리콘밸리에 이어 제2위 벤처허브로 떠오르며 '실리콘 앨리'로 불리고 있다. 이 같은 약진에는 풍부한 금융자본과 문화·언론의 중심지, 거대 소비시장 등 이점 외에 멘토링 서비스, 저가의 사무실 제공, 세제혜택 등 뉴욕시의 벤처 육성책도 한몫을 했다.
벤처펠로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벤처 창업자가 엄격한 심사를 거쳐 벤처펠로에 선발되면 사업 분야별 멘토 상담, 글로벌 기업과의 네트워킹 서비스 등이 제공된다. 올해도 미디어·바이오·패션·교육·금융 등 30명의 펠로가 선발됐다. 또 900여개의 창업기업이 뉴욕시 인큐베이터 시설을 이용하고 있다. 특히 오는 2017년에는 코넬대 뉴욕 기술 캠퍼스가 1차로 완공될 예정이다. 총 20억달러가 투입되는 캠퍼스가 2037년 최종 완공되면 뉴욕은 동부의 새로운 기술 클러스터로 도약하게 된다.
IT산업은 금융에 이어 뉴욕시의 중요한 성장동력이다. 5월 발표된 뉴욕시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현재 IT산업의 일자리 수는 2009년보다 33%나 증가했다. 뉴욕시 다른 산업의 일자리 증가폭인 8%의 네 배에 이른다. IT 부문의 평균 연봉도 11만8,600달러로 다른 부문의 7만9,500만달러보다 훨씬 많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업인 텀블러, 수공예 쇼핑몰인 에시, 위치기반 SNS 업체인 포스퀘어, 온라인디자이너몰인 팹닷컴(Fab.com) 등의 성공신화도 뉴욕에서 탄생했다.
빌 더블라지오 현 시장 역시 신생기업 지원망을 더 촘촘히 짜고 있다. 그는 올 5월 '기술인재 파이프라인'으로 불리는 훈련 프로그램에 1억달러를 투입해 수천개의 첨단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또 4,500명의 컴퓨터 과학과 엔지니어 전공학생들을 신생기업과 연결해주고 30명의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일자리 창출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물론 뉴욕시가 실리콘밸리를 따라잡으려면 아직 멀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벤처캐피털 업계 시장조사 업체인 CB사이트에 따르면 뉴욕시의 벤처 투자액은 지난해 30억달러로 2009년의 8억달러보다 2배 이상 늘었지만 실리콘밸리의 114억달러에는 한참 밑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뉴욕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무엇보다 세계문화의 중심지이자 분위기가 자유로운 뉴욕의 매력이 젊은 벤처인을 블랙홀처럼 끌어당기고 있다는 것이다. 온라인을 통한 프로그래밍 교육업체인 코데카데미의 잭 심스 창업자는 "최근 본사를 실리콘밸리에서 뉴욕으로 옮겼다"며 "앞으로 코넬대 등에서 엔지니어 등 인재를 구하기 쉬워지면 다음 창업세대는 뉴욕 생태계에서 일하기를 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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