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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가 흔들리고 있다. 경제정책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과 위상이 정치권의 영향력 확대와 타 부처의 견제, 예산정책처 등 국회 관료조직의 역할 증대로 줄어들고 있다. ◇정치권에 경제정책 주도권 '뺏겨'=요즘 재정부 내에서는 재정부가 '위기와 기회'의 기로에 섰다는 얘기가 회자되고 있다. 국회만 봐도 집권당인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야권으로부터 감세정책과 규제완화에 대해 질타 받기 일쑤다. 소득세율 인하 방침에 대해서도 소득세 추가 인하 유예, 소득세 최고구간 신설 등 감세정책 보완론을 주장하고 있어 곤혹스러운 처지다. 10일에는 정운찬 국무총리가 국회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 과정에서 내년부터 시행하려는 법인세·소득세 추가 인하 정책에 대해 "경기부양을 위한 감세는 별로 효과가 없어 소득세 인하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밝혀 재정부를 난처하게 했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역대 정권을 보면 재정부가 집권당으로부터 경제정책에 대해 질타 받거나 총리가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흔치 않았다"면서 "직원들 사이에 국회만 가면 작아지는 장관 모습을 보면서 씁쓸하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온다"고 말했다. ◇실세 장관들에 밀려 부처 협의도 '난항'=국회뿐이 아니다. 재정부가 핵심과제로 추진하는 경제정책을 놓고 관련 부처 협의에서도 난항을 겪고 있어 '공전'하는 정책이 허다하다. 임시투자세액공제 폐지는 지식경제부가 발목을 잡고 있다. 한나라당 수석정책조정위원장을 지낸 정치인 출신의 최경환 지경부장관이 기업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임투세액공제는 당장 폐지보다 기업의 자생력을 가질 때까지 2~3년간 단계적으로 줄여나가야 한다고 맞서고 있어 당혹스러운 입장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공약인 의료선진화를 위해 추진하는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영리병원) 도입 문제도 정치인 출신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전 장관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정권출범 이후 2년이 넘게 결론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의회 관료주의 확대 '산 너머 산'=국회 내 예산정책처와 입법조사처 등과 사사건건 대립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대목이다. 예산정책처와 입법조사처의 확대는 입법부 공무원 즉 입법고시 출신의 관료들이 늘어나는 것으로 이들은 3권 분립 원칙에 따라 재정부가 추진하려는 정책마다 제동을 걸고 있다. 당장 예산정책처는 세제개편안의 감세효과가 부유층 몫이라며 재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최근에는 내년도 예산에서 4조원을 삭감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내놓아 재정부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지난 6월에는 재정부가 주도하고 국토해양부가 거들어 수정한 국가재정법과 관련, 장관 승인만으로 4대강 사업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제외하는 것은 헌법 위반이라 국회 입법조사처가 지적해 재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다. 재정부의 다른 관계자는 "행정부 견제 명분 한에 의회 관료들이 늘어나면서 또 다른 걸림돌이 생겼다"며 난처한 속내를 나타냈다. ◇재정부 역할 감소… 긍정론도=최근 재정부의 위상약화, 역할 감소에 대해 긍정론도 있다. 한 야당 의원은 "재정부가 모든 경제정책을 왜 주도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려는 핵심과제가 많은 만큼 재정부는 작더라도 경제정책 하나하나가 올바르게 이행되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여당의원 역시 "이명박 정부가 (재정부 역할을 줄이는)정부조직 개편을 했던 이유를 재정부가 되짚어봐야 한다"며 "정책은 혼자 주도하면 부작용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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