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가 생긴 것은 지난 1876년. 137년 역사상 한 시즌에 20홈런과 20도루ㆍ100볼넷ㆍ100득점을 달성한 1번 타자는 한 명도 없었다. 아메리칸리그에서 리키 핸더슨(1993년)과 그래디 사이즈모어(2007년) 2명만 있었을 뿐이다. 홈런도 잘 치면서 발도 빨라야 하고 볼을 잘 고르는 선구안까지 갖고 있어야 하는 등 자격조건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득점을 많이 올리려면 후속타자들의 적시타가 부지런히 터져줘야 한다.
'추추트레인' 추신수(31ㆍ신시내티)가 메이저리그 데뷔 9년 차에 내셔널리그 역사를 새로 썼다. 왼손 엄지 통증으로 2경기를 쉬고 24일(이하 한국시간) 뉴욕 메츠와의 신시내티 홈경기에 나선 1번 타자 추신수는 2루타 1개를 포함해 6타수 3안타에 2도루 2타점을 쏟아부었다. 전날까지 21홈런ㆍ18도루ㆍ109볼넷ㆍ105득점을 기록 중이던 추신수는 0대0이던 2회 말 2사 1ㆍ3루에서 중전 적시타를 때린 뒤 2루를 훔쳤고 2대2로 맞선 9회에는 2루타 뒤 3루를 훔쳐 21홈런ㆍ20도루ㆍ109볼넷ㆍ105득점을 완성했다.
3년 만에 20홈런ㆍ20도루 클럽에 가입한 추신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대2 동점이던 연장 10회 1사 1ㆍ3루에서 걷어 올린 공이 좌중간 펜스를 직접 때렸다. 3대2로 경기를 마무리 짓는 끝내기 안타. 그라운드에서 양팔을 들어올린 추신수를 신시내티 전선수단이 달려들어 얼싸안았다. 이날로 신시내티는 남은 5경기에 관계없이 5팀으로 구성되는 내셔널리그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했다. 대기록 작성도 모자라 팀을 가을야구로 이끈 추신수에게는 '퍼펙트 데이'였다.
◇이치로도 못한 20ㆍ20ㆍ100ㆍ100=그동안 미국인들에게 메이저리그 아시아 타자하면 곧 스즈키 이치로(40ㆍ뉴욕 양키스)로 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치로는 2001년부터 10년간 200안타 이상씩을 기계처럼 찍어냈다. 이 기간 한 번도 3할 타율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고 지난달에는 미ㆍ일 통산 4,000안타 대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이치로에게도 20홈런ㆍ20도루ㆍ100볼넷ㆍ100득점은 너무 멀었다. 20홈런을 달성한 시즌도 없었고 볼넷도 68개(2002년)가 가장 많았다. 물론 공을 오래 지켜보기보다 나쁜 공도 안타로 만들어내는 이치로를 추신수와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시애틀에서 이치로에게 가로막혀 좀처럼 출전기회를 얻지 못하던 데뷔 초를 떠올리면 추신수의 이번 기록은 또 다른 의미로 뜻깊다.
◇생애 첫 가을야구=추신수의 올 시즌 성적은 타율 0.285에 21홈런 54타점. 볼넷과 득점, 출루율(0.423)은 리그 2위이고 출루율과 장타율을 더한 OPS는 0.887로 리그 8위다. 올 시즌 뒤 자유계약선수(FA)가 되는 추신수는 이대로면 연봉 1,500만달러(약 161억원) '잭팟'도 기대할 만하다. 추신수의 올해 연봉은 737만5,000달러(약 79억원)다.
'FA 대박'으로 가기 전 추신수가 한 번 더 날아올라야 할 무대가 있다. 바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향한 포스트시즌이다. 고교 졸업 후 미국에서만 뛴 추신수는 가을야구 경험이 올해가 처음이다.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은 다음달 2일부터 시작되며 신시내티는 남은 경기 결과에 따라 LA 다저스와 격돌할 수도 있다. 류현진(26ㆍ다저스)과 추신수가 4강을 놓고 한국인 투타 맞대결을 벌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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