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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동북아, 어디로 가나] <2> 스즈키 유지 호세이대학 국제정치학 교수

"美 보수파도 日 집단자위권 경계… 양국공조 흔들릴 수도"


美 군비 분담 차원 日 재무장 환영… 보수정권 들어서면 상황 달라질 가능성

글로벌시대에 亞 각국 민족주의로 회귀… 영토 문제로 우발적 무력충돌 우려

한일관계 개선 양자만으론 해결 어려워 다자·민간협의체 등 채널 다양화 필요


"아베 신조 총리는 패전국으로 일본을 속박해온 미국 주도의 전후체제에서 벗어나 자립하는 것을 정치적 사명으로 삼고 있습니다. 집단자위권 행사는 군사적 자립을 의미합니다. 문제는 미국의 보수파가 이러한 일본의 재무장을 경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 보수파 사이에서는 중국만큼 일본이 문제아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습니다." 일본 정치의 중심지 도쿄 지요다구에서 야스쿠니신사와 나란히 서 있는 호세이대의 이치가야 캠퍼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한 스즈키 유지(69·사진) 국제정치학 교수는 동북아에서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중일관계 못지않게 동맹국인 미국과 일본 관계 역시 불안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의 현 민주당 정권은 군비부담 차원에서 일본의 집단자위권을 환영하고 있지만 보수정권이 들어서면 미국의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동북아 지역의 역동성은 한중일 3국이 서로 경쟁하는 와중에도 상호의존적인 경제적 연계를 유지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글로벌화 시대에 노골적으로 국익을 추구하는 내향적 내셔널리즘, 위축된 글로벌리즘으로 치닫는다면 이들은 평범한 국가들이 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오늘날 동아시아 정세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불안한 상태입니다. 이 위기는 어디에서 비롯됐다고 보십니까.

△지금처럼 상황이 악화된 계기가 된 시점은 지난 2010년 무렵입니다. 이때를 전환점으로 중국은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국가로 등극했죠. 그러나 급부상한 중국이 보여준 것은 냉전 이후 새로운 국제질서를 형성하는 '글로벌 중국'이 아니라 중국의 국익과 위신만을 높이려는 일종의 제국주의적 모습이었습니다. 빈부격차와 정치개혁의 필요성 등 국내 문제에서 눈을 돌려 시간을 벌기 위해 대외적으로 매파 정책을 추구하는, 과거 일본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 중국의 변화에 일본에서는 아베 총리 같은 정치인의 인기가 높아졌습니다. 국제정치의 작용·반작용(action-reaction) 모델의 전형인 셈이죠. 이러한 작용이 2000년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부터 시작됐는지 중국에서 비롯됐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일본의 보수화와 급속히 대두한 중국이라는 요인이 맞물려 냉전 후 신질서를 구축하는 데 마이너스로 작용한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우선 앞으로 중국 경제가 꺾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외자유입이 줄어들고 노동인구도 감소하기 시작하면 중국 내 사회변동이 일어나면서 상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가능성은 낮지만, 한중일 3국 관계가 악화돼 상호의존적 경제구조를 유지할 수 없는 시점에 도달하게 되면 역으로 경제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느끼고 생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지금 아시아 각국은 공동안보나 경제협력 모델을 마련하지 못하고 자국 이익을 추구하는 내향적 내셔널리즘으로 회귀하고 있는데 글로벌 시대에 이처럼 위축된 글로벌리즘, 또는 반(反)글로벌리즘 아래 국익만 추구한다면 아시아 각국은 그저 평범한 국가가 되고 맙니다. 앞으로 4~5년에 이러한 현상이 가시화될 것입니다.

-미일동맹이 공고해지는 한편으로 양국관계가 매끄럽게 보이지는 않는데요.

△일본 입장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미국과의 관계입니다. 글로벌 경제 분야에서 다자주의가 움직이지 않는 것의 핵심 문제는 미일 간 갈등입니다. 그런 점에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새로운 다자주의 질서 형성에 도움이 될 가능성은 매우 작다고 봅니다. 안보에서는 일본이 보통국가로 돌아가기 위해 집단자위권을 내세우고 미국 민주당 정권은 자국 부담을 던다는 차원에서 이를 환영하고 있어 양자 간 이해가 일치합니다. 그러나 일본이 원하는 것은 미국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군사적 자립이라는 점은 누가 봐도 명백합니다. 아베 총리는 일본의 자유를 속박하는 전후체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정치적 사명으로 삼고 있습니다. 보다 대등한 미일 동맹관계를 염두에 둔 것이죠. 미국 보수세력이 일본의 이러한 움직임을 경계하기 시작했습니다. 보수파는 집단자위권 행사를 비롯한 일련의 움직임이 장차 괴물을 낳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의 미일 관계는 매우 어려운 국면을 맞을 수 있습니다.

-대러·대북 관계에서도 최근 일본은 미국과 차별화된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자립 추구가 미국에서 가장 바라지 않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북일협상입니다. 일본은 북한의 납치 피해자나 북방영토 문제가 걸린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미국의 양해가 없더라도 재량에 따라 움직이려 하고 있습니다. 아베 총리에게는 자립한 보통국가 일본, 대국으로서 존경받는 일본이 되고 싶다는 염원이 남들보다 강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치를 떠나 사명으로 여깁니다. 대북 문제에서도 장차 자국의 이익을 스스로 지켜야 하는 날이 올 것이므로 그 사이 북한과의 납치자 문제를 매듭지어야 하며 이를 자신의 임기 중에 완수해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어하는 것이죠.



-동북아 전체를 놓고는 영토 문제가 가장 심각해 보이는데요, 일각에서는 우발적 무력충돌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영토 문제에 관해서는 공생공존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철저한 논의를 벌이고 일치된 의견을 도출할 수 있다면 그에 따라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서울에 설치된 한중일 협력사무국이 3국 정상회담을 보다 활성화하고 유력한 협의체로 육성해야 합니다. 한중일 협력의 제도화 외에는 방도가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중국을 중심으로 한 우발적 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역사적 경험과 핫라인을 통해 신뢰관계를 구축해온 한일 간에는 충돌을 억제할 수 있지만 한중·중일 간에는 그러한 두터운 신뢰관계가 아직 없습니다.

-한일관계의 물꼬는 어떻게 터야 할까요.

△세 가지 방안을 고안해야 합니다. 우선 한일관계는 양자 간에 해결되기 어려우므로 미국을 포함해 보다 글로벌한 틀에서 논의가 이뤄져야 합니다. 두 번째로 중국과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을 포함한 지역적 틀을 활용해야 합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등 다자주의적 관계에서는 양국이 대립할 상황보다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는 부분이 크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민간 협의체나 비정부기구(NGO) 등 채널을 다양화해야 합니다. 정치적으로 양국관계는 더 악화할 가능성이 있지만 사회적으로는 시민사회의 성숙과 공존을 추구하는 지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것이 표출되지 않거나 표출되기 어려운 정치적 환경에 있을 뿐입니다.

-올해는 1차 세계대전 1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현재의 동아시아 정세를 100년 전과 비교하는 시각도 많은데 중장기적인 동북아 국제관계의 모습은 어떤 것입니까.

△100년 전과 지금은 다릅니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이 실시간으로 일본에 알려지고 한국의 좋은 점도 실시간으로 평가됩니다. 이제 개인들이 국경을 넘어 간섭할 능력을 갖게 됐습니다. 그런 점에서 지난 100년의 역사를 허송세월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반글로벌리즘이 고개를 들고 있다고 고립주의로 돌아가거나 민주주의에서 권위주의·군국주의로 되돌아가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당장 국론이 뒤바뀌거나 분쟁이 가라앉지는 않겠죠. 어느 정도의 충돌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쟁으로 번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평화 연구 전문가로 정계 인맥도 넓어

스즈키 유지 교수는 일본에서 법학대학으로 유명한 사립대 호세이대에서 지난 2005년 국제정치학과를 개설한 주역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중심의 국제정치, 특히 지역평화 연구의 전문가로 일본 내각이나 국내외 정치계의 인맥도 넓다. 전후 평화연구를 중심으로 한 일본 국제정치학계의 대가로 꼽히는 사카모토 요시카즈 도쿄대 교수의 제자이자 스스로를 '자유주의자(liberalist)'로 소개하는 스즈키 교수는 1990년대 일본평화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유럽 등을 망라하는 폭넓은 연구활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아시아 지역주의에 입각한 동아시아 공동체 창설 가능성과 지역 간 평화협력 문제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약력 △1944년 △도쿄대 국제정치학 석사, 박사과정 중퇴 △호주 모나슈대 정치학과 연구원 △말레이시아 국립 말라야대 교수 △미 존스홉킨스대 객원교수 △일본평화학회장 △세계유네스코협회연맹 회장 △호세이대 국제정치학 교수

◇주요 저서 '글로벌리제이션과 글로벌 거버넌스' '지역분쟁의 지역적 평화해결의 가능성'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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