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경쟁력 약화, 내수 침체와 세계 경제성장 둔화로 인한 매출 하락, 생산성 저하에도 유지되는 과잉 설비, 신규 투자 여력의 감소. 마치 지금 우리나라 경제의 데칼코마니 같은 1990년대 후반 일본에 대한 평가다. 지난 1999년 일본 정부는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기업의 사업 재편에 대한 전면적 지원을 결정했다. 바로 국내에서 '원샷법'으로 더 잘 알려진 사업재편지원특별법의 벤치마크인 산활법(産活法)이다. 4년 한시법이던 산활법은 경제구조 변화를 반영하며 지속되다 산업경쟁력강화법으로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아베노믹스와 맞물려 일본 기업의 부활에 바탕이 되고 있다.
특혜 논란으로 벌써 사문화 우려
산활법의 가장 큰 의의는 정부가 기업 단위 사업 재편의 한계에 주목한 것이다. 기업은 생산성과 수익성이 저하된 사업을 정리해야 하지만 자발적으로 축소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정리 과정에서 얻게 되는 실패라는 낙인 외에도 반사이익을 누리는 경쟁 기업을 고려한다면 사업 재편은 더 지연되기 마련이다. 선제적 시점을 놓쳐 발생한 기업 부실은 사회가 감수해야 할 비용을 급증시킨다. 국가 내 비효율적 배분이 고착화된 자원을 생산성이 높은 곳으로 이동시키기 위해서는 한 기업, 한 산업이 아닌 다수의 참여가 필요하다. 이에 일본 정부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사업 재편 속도를 높이고 규모를 키우는 역할을 담당한다.
5월27일 사업재편지원특별법 공청회가 열렸다. 사업 재편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 형성은 환영하나 내용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상법과 공정거래법의 절차적 특례를 제공한다지만 핵심적인 내용이 벌써부터 특혜 논란에 휩싸여 포함되지 않았다. 이러다 최종 법안에는 허울만 남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크다. 일반법상 개선이 필요한 조항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는 것은 특혜라고 할 수 없다. 대표적으로 주식매수청구권은 유럽이나 미국 델라웨어주 회사법과 달리 반대 주주가 시장에서 주식을 매도할 수 있는 상장사에도 조건 없이 적용되고 있다. 지난해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사례에서 보듯이 기업의 합병을 무산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지주회사의 증손회사에 대한 주식소유 비율 완화 역시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더욱이 모든 지원책은 정부 승인이 전제되므로 남용을 방지할 수 있다.
특혜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원 대상이 '미래 수익성 있는 사업을 추진하는 누구나'여야 한다. 과거 실적이 승인 기준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 기업의 규모가 제한이 돼서는 안 된다. 중소기업이나 대기업을 구분해 법 적용에 제한을 두는 것은 입법 취지에도 맞지 않으며 규모 의존적 정책이 가로막은 기업 성장의 예는 이미 충분하다. 특정 산업에만 한정해 적용하는 것 또한 부적절하다. 특별법의 경제적 가치를 극대화하려면 인증 요건을 갖춘 사업에 문턱을 없애야 할 것이다. 산활법과 마찬가지로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등록면허세 감면, 과점주주 간접취득세 배제와 같은 세제적 인센티브도 동반돼야 한다.
기업의 '선택과 집중' 돕는 정책 돼야
우리 경제에 대한 우려는 수치로 현실화되고 있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3%대도 자신할 수 없게 됐다. 구조개혁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2%대 하락도 가능하다는 것이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전망이다. 경제 성장 기반을 다시 다지기 위해서는 기업 경쟁력 회복이 필수적이다. 기업 자체의 노력과 함께 정부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필요하다. 과거처럼 기업 부실을 사후 관리하고 특정 산업을 구제하는 정책이 아니라 기업의 선제적이고 역동적인 사업 재편의 길을 열어주는 일이다. 이 길은 고용 확대로도, 가계소득의 증대로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일본의 산활법이라는 지도를 가진 사업재편지원특별법에도 기업소득환류세제처럼 정부의 확신이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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