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지기 친구가 하루아침에 적이 되는 정치권에서 서청원 의원(72)은 ‘의리 있는 강한 리더십’을 강조한다. 현역 최다선인 7선의 정치인생에서 나온 깨달음이라고 한다. 그의 평전 제목인‘우정은 변치 않을 때 아름답다’라는 말은 서 의원 스스로도 “항상 생각하게 되는 문구”라고 한다.
그는 1943년 4월 3일 충남 천안에서 4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정치에 대한 관심은 중앙대 정치외교학과를 진학하면서 시작됐다. “대학 때부터 정치지향적인 것 같았다”고 얘기할 만큼 그는 일찍부터 정치에 큰 관심을 드러냈다. ‘정치지향적 인간’이었던 그는 중앙대 총학생회장, 전국총학생연합회 위원장 등을 지내며 대학가에서 이름을 날렸다. 1964년에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대일외교 정책에 반대해 대학생 투쟁을 주도하다 4개월 가량 투옥되기도 했다. 대학졸업 후 조선일보에 들어간 그는 12년 동안 기자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억나는 장면으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꼽는다. 취재 과정에서 독재정권의 실상을 목도한 그는 “지구상에서 어떤 형태이건 폭력은 사라져야 한다는 신념으로 정치에 뛰어들게 됐다”고 말한다.
정치의 시작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했다. 그는 12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야당의 거두인 김영삼계(YS)와 김대중(DJ)계가 연합해 만든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에 들어가면서 ‘YS 키즈’로 자리매김 했다. 이후 통일민주당에서 대변인, 총재 비서실장을 맡으며 정치적 역량을 키웠다. 14대 대선에서 김 전 대통령을 당선시키는 데 앞장섰던 그는 문민정부에서 정무제1장관과 신한국당 원내총무(현 원내대표)를 맡으며 정치력을 발휘했다. 그가 원내총무를 역임할 당시 15대 국회 개원 협상이 김영삼·김대중·김종필 등 ‘3김’의 기싸움으로 지연되었는데, 야당 총무들과 30여 차례 만나 타협의 물꼬를 튼 일화는 아직도 여의도 정치권에서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서 의원이 15대 국회 정상화의 ‘1등 공신’으로 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의 정치인생 첫 시련은 2002년에 닥쳤다. 당시 한나라당 대표를 맡아 16대 대선을 이끌었던 서 의원은 이후 불법대선자금 수수혐의로 구속됐다. 그가 교도소에서 나온 뒤 박근혜 대통령이 가장 먼저 꽃을 들고 집으로 찾아와 격려했다고 한다. 서 의원은 자신을 대신해 당 대표를 맡은 박 대통령이 ‘천막당사’로 나와 ‘차떼기 대선 자금’으로 궁지에 몰린 한나라당을 위기에서 구해낸 데 대한 빚을 졌다고 생각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서 의원이 박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선 것도 이 같은 인연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당시 기자회견을 통해 “천막당사를 짓고 눈물겨운 호소로 127석의 제1야당을 만들어낸 오늘 박근혜 대표에게 빚을 갚으러 왔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의 경쟁 후보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는 6·3 한일협정 반대 시위로 함께 투옥됐던 인연이 있었지만, 당이 힘들 때 나서준 박 대통령과의 ‘의리’가 더 중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이로 인해 서 의원은 YS에게 “왜 박근혜를 지지하느냐”는 질책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이 전 대통령의 ‘도곡동 땅 차명소유 논란’을 직접 제기하며 적극적으로 박 전 대통령을 지원했다. 결국 이 전 대통령의 당선 이후 그는 18대 총선 공천장을 받는 데 실패했다.
서 의원의 선택은 ‘탈당’이었다. 그는 한나라당을 나가 ‘박근혜’를 당의 핵심 가치로 내세운 ‘친박연대’를 창당했다. 그는 총선을 불과 한 달 앞두고 만든 당을 이끌고 14석을 얻는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선거 과정에서 공천헌금을 받은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 받고 또다시 감옥에 들어갔다. 2013년 10·30 재·보궐선거에서 경기 화성 지역에 공천을 받아 5년 만에 국회에 돌아왔다.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그를 바라보는 당내 시선은 복잡하다. 일단 이전 당 지도부가 ‘청와대 거수기’라는 비판을 받아왔던 만큼 정치 경험이 많고 리더십이 뛰어난 서 의원이 차기 집권여당의 대표로 적합하다는 평가가 있다.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구 동교동계(DJ)계 의원들과 두루 통한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야당 내부에서도 그의 정치적 역량만큼은 매우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다.
다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그가 집권여당의 개혁을 이끌기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한나라당 시절부터 국회에서 근무한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정치권에서 ‘올드보이(OB)’로 상징되는 서 의원이 당 대표가 되면 개혁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불법대선자금 및 공천헌금 수수 의혹으로 구속됐던 과거 전력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서청원 의원이 걸어온길>
1943년 충남 천안 출생
1964년 ‘6·3 한일협정’ 반대 시위 주도
1969년 조선일보 입사
1981년 국회 입성(11대·민주한국당·서울 동작)
1993년 정무1장관 임명
1996년 신한국당 원내총무
2004년 ‘불법 대선자금’ 수수 혐의 구속
2008년 ‘친박연대’ 창당(당 대표)
2009년 ‘공천 헌금’ 수수 혐의 구속
2013년 10·30 재보궐선거 출마·당선(경기 화성)
2014년 7·14 새누리당 전당대회 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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