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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예체능 코리아의 힘

프랑스에 몇 년간 거주했던 10여년 전 프랑스인들에게 한국은 먼 나라였다. 파리의 저널리즘학교에서 만난 한 프랑스 남학생은 내게 "난 일본 망가(만화)를 좋아한다. 한국도 망가가 유명하냐"고 물었다. 한국에 대해 아는 게 없는 그로서는 같은 아시아인 일본과 연관 짓고 싶었을 듯하다. 당시 우리 가족에게 프랑스어 회화를 가르쳐주던 파리 7대학 학생 세드릭은 그나마 중고교 시절 태권도를 배우다 한국 문화에 관심이 생겨 한국학과에 입학한 경우다. 땀방울과 창의력의 산물 프랑스에 사는 한국 아줌마들 사이에서는 옷을 좀 차려입고 나가면 현지인들이 일본인으로 여기고 수수하게 하고 나가면 중국인으로 본다는 말이 회자되고는 했다. 어쩌다 좌파 색채의 석간신문 '르몽드'가 북한 소식을 1면 톱으로 전하던 무렵이면 프랑스인들은 내가 북쪽인지 남쪽인지 정도에만 관심을 보였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프랑스에서 한국을 아는 사람들은 이렇게 띄엄띄엄 있었다. 그런데 요즘 유럽에 부는 한류 바람을 보면 10년 만에 격세지감, 상전벽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물론 당시에도 삼성이나 LG 같은 브랜드들은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었지만 하드파워에 그쳤다면 영화ㆍ드라마ㆍK팝 등은 한국의 소프트파워까지 널리 알릴 수 있게 됐다. 유럽의 한류 붐에 대해 일각에서는 일본 문화에 관심 있던 이른바 '망가 팬'들이 '한드(한국드라마) 팬'으로 말을 갈아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내게 망가를 물어보던 남학생도 지금 한류 팬이 돼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세드릭이 다니던 파리 7대학 한국학과도 학생 수가 급증해 현재 과 학생은 150명, 한국어 수강생은 900여명이나 된다고 한다. 한류 붐에 힘입어 최근 몇 년 새 세계 문화계의 핵심세력으로 급부상한 한국이 이번에는 오는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에 성공하면서 스포츠가 또 한번 일을 냈다. 동계 스포츠의 불모지 아시아, 그것도 극동의 변방 한국에서 김연아 같은 세계적인 피겨 퀸이 탄생하고 이승훈ㆍ모태범ㆍ이상화 같은 빙속(스피드 스케이팅) 삼총사가 혜성처럼 등장한 한국의 스포츠 발전 스토리는 세계인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골프는 또 어떤가. 한국 골프는 이미 세계 무대에서 국가 대표 스포츠 종목으로 인식돼 있다. 웬만한 미국투어 골프대회에는 국내 선수들이 상위권에 포진해 있고 지난해 일본투어는 한국 선수들이 남녀 상금왕을 휩쓸었다. 드라마ㆍK팝 같은 대중문화뿐 아니라 정통 문화에서도 클래식 한류를 불러일으킬 태세다. 지난달 30일 열린 제14회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는 성악ㆍ피아노ㆍ바이올린 등을 망라해 한국인이 총 19명의 입상자 가운데 5명을 차지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서양인 체형에 맞는 예술로 알려진 발레도 이제 동양인이라고 기죽을 일이 없다. 바로 며칠 전 세계 최정상의 발레단인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의 박세은씨가 입단하기로 했으며 김기민씨도 최근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에 동양인 남자 무용수로는 처음 뽑혔다. 젊은 세대는 '예체능 코리아'의 힘을 거침없이 세계 만방에 떨치고 있다. 이들 젊은 예술가와 스포츠 선수는 어린 시절부터 피땀 어린 노력은 기본이고 심리적 부담까지 이겨내는 강인한 정신력을 갖추고 있으며 여기에다 한국적인 혹은 독창적인 자신만의 강점으로 무장한 창의력까지 겸비해 세계인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다. 자신의 분야서 최선 다하길 전쟁의 폐허에서 50년 만에 세계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한국경제의 성공 스토리에 이어 반만년 역사 속에 깃든 한국인의 예체능 DNA로 문화예술의 성공 스토리를 새로 만들어내고 있다. 요즘 같아서는 한국 젊은이들, 특히 10~20대 스포츠 선수와 예술가들의 잠재력이 도대체 어디까지일지 예단이 불가능할 정도다. 전 국민이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이들 같은 자세만 갖는다면 한국의 미래는 걱정이 없다. 한국의 역사를 다시 써나가는 젊은 세대들을 위해 국가나 후세의 미래보다 당장의 표에만 몰두하면서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는 정치인들을 비롯한 기성 세대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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