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정치 역사에서 촌철살인의 어록을 남긴 명대변인으로 꼽힌다. 그의 어록 중 지금까지도 공감을 얻으며 가장 널리 회자되는 것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다. 자신은 어떤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갖은 명분을 들이대며 빠져나가고 남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정치인들의 습성은 25년이 넘게 지나도록 달라지지 않았나 보다.
안타깝게도 지난 2일 정치권에는 이 말이 꼭 들어맞는 일이 또 생겼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6ㆍ4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격적으로 통합하기로 한 것이다. 다당 구도를 통한 '새 정치'를 표방하며 선거연대는 절대 없다던 안철수 무소속 의원의 공언을 믿었던 국민들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국민의 비판을 의식해서 인지 두 당은 통합의 명분으로 새 정치를 들고 나왔다. 기초의회 및 기초단체장 공천 폐지 등 국민과 약속을 지키지 않는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오만을 심판하고 새 정치를 이루겠다는 의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통합의 방식도 일반적인 합당이 아니라 '제3지대 신당'을 창당해 양당이 합류하는 방식을 취하기로 했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離合集散)하는 구태정치의 모습과 차별화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두 당이 모이기 전 간판을 새로 단 집을 짓든, 두 당이 하나로 모인 뒤 간판을 다시 달든 결정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방식은 어떻든 서로 정치적 견해와 지향점이 다른 두 개의 당이 한 지붕 아래 모이는 합당을 했다는 것이다. 드러난 명분이 무엇이든 합당 결정에는 지방선거에서 야권 단일후보를 내야 승리할 수 있다는 정치공학적 고려가 깔려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결국 통합신당 출범은 '남이 하면 구태정치, 내가 하면 새 정치'냐는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선거와 함께 분열과 합당을 반복하는 야권의 고질적 병폐를 그대로 답습한 채 새 정치라고 포장만 해놓은 셈이다. 더불어 '안철수 현상'에 열광하며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바라던 국민에게는 허탈감을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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