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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4월 14일] 양치기 소년과 청와대

"북한은 남한이 진지하고 일관성 있는 대화 파트너인지에 확실한 믿음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양측 간의 신뢰 회복이 중요합니다." 최근 방중한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에게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북핵 문제를 둘러싼 남북관계에 대해 논하면서 한 말이다. 왕 부장은 중국에서 북한과의 당대당 외교를 책임지고 있는 인물로 올 초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북핵 및 6자회담을 조율했다. 북한과 전통적 혈맹 관계인 중국 측 인사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겠지만 요즘 한국 정부의 대북 접근방식을 보고 있노라면 곱씹어볼 대목이다. 특히 최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방중설을 놓고 청와대가 벌였던 희극(?)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청와대 대변인이 공식 브리핑에서 지난 4월 1~2일 김 위원장의 방중이 예상된다고 했고 외교안보수석이 친절히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방중 임박을 알렸다. 청와대가 예고한대로 김 위원장의 방중이 이뤄지지 않자 이번에는 국정원장이 나서 이번 달 25일로 방중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25일은 지난해 방북까지 해가며 북핵 문제를 논의했던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동남아 순방이 잡혀 있어 물리적으로 김 위원장의 방북을 기대하기 힘들다. 다른 국가 간의 정상회담 일정을 제3국가가 나서 예고하는 것은 기본적 외교 관례에 어긋나는 행위라는 지적이다. 특히 북한 정권의 폐쇄성과 예측 불가성을 감안할 때 무엇을 위해서 청와대가 나서 특정일을 거론하며 방중설을 흘렸는지 이해하기 힘든 측면이 많다. 2006년 1월 김 위원장이 방중했을 때 당시 청와대는 언론이 확인을 요청하자 "관례상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설령 알고 있어도 당사자인 북한과 중국이 발표하지 않는데 한국이 나설 수 없다고 했다. 중국은 김 위원장의 방중을 원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의 핵을 원하지 않고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대북한 경제지원 및 협력이라는 지렛대를 통해 북핵 문제를 풀어보려고 하고 있다. 지난해는 원자바오 총리가, 올해 초는 왕 부장이 방북해 공식적으로 김 위원장의 방중을 요청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 위원장으로서도 지난해 화폐개혁 이후 더욱 피폐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 북핵 사태 해결로 경제 회복의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청와대가 나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바람에 김 위원장의 예정된 방중이 불발로 끝난 측면이 있다. 이번 해프닝은 이명박 정부가 초기부터 '비핵 개방 3000' 등을 외치며 시작한 북한 압박 및 봉쇄 정책의 연장선과 맞닿아 있는 것 같아 씁쓸함을 지우기 힘들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한국 정부는 경협이든 관광이든 모든 측면에서 북한과 대화를 해보자는 접근방식보다는 자꾸만 조건을 내걸어 북한을 고립시키는 듯한 인상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13일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를 동결한다고 하면서 남북관계가 더욱 경색되는 양상이다. 한국 정부는 북한을 몰아쳐 소기의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왕 부장의 말처럼 원점에서 진지하고 겸허하게 북한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를 곱씹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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