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생일, 부모님의 생일 선물, 한밤중 거세게 문을 두드리던 나치 경찰관, 낯선 공간에서의 생활…그의 어린 시절 기억 가운데 가장 강렬한 것들이다. 훗날에야 그는 알게 된다. 강렬한 공포의 기억을 남긴 1938년 11월 9일의 그 밤은 독일어권 전체의 수많은 유대인이 약탈당하고 목숨을 잃은 재난의 밤, 크리스탈나흐트였다는 것을.
참혹한 홀로코스트를 피해 세계적인 과학자로 우뚝 선 에릭 캔델의 삶이 책으로 펼쳐진다. 에릭 캔델은 뇌에 기억이 저장되는 신경학적 메커니즘을 밝혀내 200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과학자다. 책은 통상의 자서전과 달리 뇌와 기억에 대한 캔델의 연구 과정과 고뇌를 함께 담아냈다. '기억은 언제나 나를 매혹했다'는 캔델의 표현처럼 생생한 묘사를 통해 그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어느새 그와 그의 연구, 그리고 그의 인생에 가까이 다가가 있다.
책은 캔델의 연구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에서 어떻게 발전해 나갔는지와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의 차이, 신경세포(뉴런) 간의 연결인 시냅스를 통해 기억이 어떻게 저장되는지 등을 설명한다. 생소한 과학용어들은 히틀러 치하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대인으로서 겪은 공포, 그 공포를 계기로 '기억'을 화두로 삼은 어린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전도유망한 과학자로 거듭난 과정, 노벨상 발표 순간의 기분 등 캔델의 인생 스토리가 더해지며 편안하고 공감 가는 이야기로 정리된다.
치열한 인생을 살아온 과학자는 결코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지 않는다. 그저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드러낼 뿐이다. 과감하게 도전하고, (장기적으로 도전할 가치가 있는) 좋아하는 것을 하라고. 굳이 말로 옮긴다면 이 내용이 아닐까 싶다. "50년 동안 가르치고 연구했지만 나는 여전히 대학에서 과학을 하는 것이 한없이 재미있다. (중략) 학생과 동료들과의 토론을 통해 (기억에 대한) 아이디어를 다듬으면서, 그리고 나중에 실험 결과에 의해 그 아이디어가 교정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큰 기쁨을 얻는다. 여전히 나는 천진한 기쁨과 호기심과 경탄으로 거의 어린아이처럼 과학의 세계를 탐험한다." 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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