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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Grexit) 문제는 이미 독일을 비롯한 유럽 내부에서 오랫동안 논의된 내용입니다. 많은 국가들이 여러 종류의 시나리오를 놓고 고민해온 만큼 외부에서 우려하는 수준의 큰 위기는 찾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긴축정책안 수용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그리스 국민투표 실시 이틀 전인 지난 3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자와 만난 유럽계 대형 투자은행(IB)의 고위관계자는 그렉스트가 일어나더라도 유럽 경제에 미칠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아시아 지역에서 지난 1990년대 후반에 외환위기가 발생했을 때도 독일을 비롯해 경제 여건이 탄탄한 다른 유럽 국가는 지속적으로 성장했다"며 "유로존 19개 국가 중 그리스가 차지하는 경제 비중이 2%에 불과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상황을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라인강의 지류인 마인강이 가로지르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는 유로존의 상징과도 같은 도시다. 독일은 그리스에 560억유로의 채권을 가진 최대 채권국이다. 또 프랑크푸르트는 그리스 정부에 대해 260억유로(8.2%·지난해 말 기준)의 채권을 보유한 유럽중앙은행(ECB)의 본사를 비롯해 도이체방크·코메르츠방크·헬라바 등 독일계 대형은행과 외국계 금융기관이 모인 금융중심지다. 인구는 70만명에 불과하지만 금융기관 종사자는 약 20만명에 달하는 등 유로존에서 가장 그리스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지역이기도 하다.
독일 2위 은행인 코메르츠방크 역시 그렉시트의 가능성을 높게 내다보면서도 그리스의 주채권국인 독일과 유럽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외르그 크뢰머 코메르츠방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그리스가 국민투표를 통해 긴축재정안 수용 반대를 선택하면 결국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는 사실상 유로존에서 그리스의 역할이 끝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리스 문제의 불똥이 유럽 주식시장에 옮겨붙을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크뢰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시인 닥스(DAX)지수가 단기적으로 그리스 문제의 부정 영향을 받아 1만1,000포인트 밑으로 떨어지기도 했지만 코메르츠방크는 투자자들에게 여전히 주식 매수를 권유하고 있다"며 "여러 긍정 요소들이 남아 있는 만큼 DAX지수는 연말까지 1만1,800포인트 수준을 회복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프랑크푸르트 시내에서 만난 현지 주민들도 그리스 문제를 전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4일 오후 프랑크푸르트 오페라 광장에서 만난 자영업자 롤란드 마이어씨는 "그리스는 여름휴가를 위해 방문했을 뿐 그곳에서 생산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해본 적이 없다"며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계속 문제를 일으킬 바에야 차라리 떠나는 게 낫고 독일과 다른 국가들은 별 탈 없이 현재의 경제 상황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대형은행의 한 프랑크푸르트 주재원은 "독일 정부와 국민들은 수년째 지속되고 있는 그리스 문제를 '앓던 이'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상황을 정리하길 원하는 것 같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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