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못 열고 日미로토 기술제휴 해지 위기 등
사업 초기 힘빠지는 나날… 다리 뻗고 잔적 없어
숱한 난관있었지만 정직 경영·품질 올인 극복
연평균 성장률 20% 달해… 비결은 신의 최우선
글로벌 생산체제 갖춰… 3년내 세계 톱 도약
살을 에는 추위와 바람에도 수백여년 동안 험준한 산, 위태로운 암벽에 붙어서도 그 푸름을 잃는 법이 없는 소나무. 동아제약·오리콤·대웅제약 등을 거치며 20년간 샐러리맨의 삶을 살고도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에 창업을 꿈꿨던 이경수(69·사진) 코스맥스 회장은 '소나무처럼 사업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 회장의 집무실 책상 뒤편에 걸린 도성욱 작가의 '소나무'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화장품 연구개발생산(ODM) 기업 코스맥스는 22년간 곧고 굵게 사업을 펼쳐왔다. 한우물을 팠고 꼿꼿하게 성장했다. 위기의 순간에도 변치 않았던 품질우선주의는 지금까지도 고객사들이 코스맥스에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는 이유다. 창립 후 22년간 연평균 20%에 달하는 성장률이 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늘 탄탄대로는 아니었다. 13일 경기도 판교의 본사 집무실에서 만난 이 회장은 공장 문조차 열지 못할 뻔했던 난관을 떠올리며 "하루도 다리 뻗고 잔 날이 없다"고 회상했다.
"충남 예산 농공단지에 7,000여평 부지를 매입해 공장을 지으려 했는데 허가가 지연되면서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었지요. 직원 가운데서 경기도 화성 향남제약공단에서 공장을 임대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이 나와 바로 추진했습니다. 그렇게 임대계약 직전까지 갔는데 면사무소에서 우리가 화장품 기업이기 때문에 제약공단 입주 자체가 안 된다는 겁니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 수개월을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와 경기도청, 향남면사무소를 쫓아다녔습니다. 그리고 모든 입주기업의 동의를 받아오면 허가를 해주겠다는 답을 받았습니다. 결국 출장 다녀온 기업인들까지 해서 전원 동의를 얻는 데 3개월이 넘게 걸렸죠."
시작 치고는 힘 빠지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전폭적인 기술지원을 약속했던 일본의 미로토가 자체적인 연구개발(R&D)를 반대하면서 두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당시 이 회장은 화장품 ODM 기업이 R&D 역량을 쌓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국내 화장품 기업의 연구소장을 스카우트했다. 그런데 미로토가 이를 핑계로 기술제휴계약을 해지하자고 요구한 것이다.
이 회장은 "한국미로토였던 당시 사명을 바꿔야 했던데다 일본과의 기술격차를 줄이기 위해 기술제휴가 필요했던 때라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며 "하지만 당시 미로토 대신 자체적인 R&D를 택한 덕분에 오늘의 코스맥스가 있는 것"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숱한 난관 속에 창업을 결심한 스스로를 탓해볼 법도 하지만 이 회장은 단 한 순간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해본 적이 없다. 이 회장은 "온갖 난관이 있었지만 향남공단에 입주한 덕에 부자재 공급이나 인재 영입이 수월했고 미로토와 결별한 덕에 미로토가 진출해 있는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도 손쉽게 사업을 벌일 수 있었다"며 "멀리 돌아가더라도 제대로 가야 한다는 것이 바로 경영이 주는 깨달음"이라고 강조했다.
올곧음으로 위기를 극복했듯 이 회장은 고객사와의 관계에서도 신의를 최우선으로 친다. 외환위기 때 사업 철수 위기까지 몰린 고객사들에 환율이 폭등하기 전 가격으로 제품을 공급하고 아무리 적은 수량이라도 주문하는 대로 만들어준 사례는 이미 유명하다.
이 회장은 "1,800원대까지 훌쩍 뛴 원·달러 환율을 적용하면 돈을 많이 벌었겠지만 고객사가 살아남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고객사들이 휘청이면서 우리도 평일에 공장을 돌리지 못할 때가 많았는데 고객이 필요하다고 하면 직원들에게 휴일수당을 주며 공장을 돌려 적기에 공급해줬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차츰 화장품 업계가 회복세로 돌아서며 코스맥스의 시장점유율은 무섭게 늘기 시작했다. 코스맥스가 짊어졌던 고통 분담에 대한 보답이었다.
이때부터 이 회장은 "계약서는 문제상황에 직면하면 휴지 조각이 돼버리고 말지만 사람 간의 신의는 사라지지 않는다"며 "고객사와 코스맥스의 관계는 파트너 이상의 친구"라고 즐겨 이야기한다. 그는 "지난해 인도네시아 공장 준공식에 온 로레알그룹의 소싱을 담당하는 프레더릭 하인리치 부사장이 현지 화장품 업계 종사자들 앞에서 '코스맥스는 로레알과 거래하는 친구'라고 얘기해 가슴이 뭉클해졌다"며 "신뢰가 있고 서로 도움이 되고 어려운 일을 함께 극복하면 그게 친구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직원들의 신뢰를 얻는 것 역시 이 회장이 끊임없이 고민하는 부분이다. 이 회장은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는 만큼 직원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고 동기를 부여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꾸준한 성장세의 비결에는 사람을 믿고 전폭적으로 밀어주는 이 회장의 용병술이 있었다. "중국 사업 초기에 코스맥스 차이나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최경 총경리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위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믿었죠. 한 번 큰 어려움이 있을 때 사람을 더 보내서 최 총경리에게 힘을 실어줬습니다. 그 결과는 연 40%에 달하는 중국 사업 성장률이 말해주고 있지요."
지난해부터 코스맥스는 글로벌 기업으로서 또 다른 역사를 쓰고 있다. 기존 상하이 공장 외에 광저우 공장을 신축하며 중국 내륙 시장용 생산은 물론 수출을 위한 전략기지로 중국 시장을 활용하고 있다. 여기에 세계 1위 화장품 기업인 로레알로부터 미국과 인도네시아 공장을 차례로 인수하며 아시아, 중동, 북·중미, 유럽을 커버할 수 있는 생산 네트워크를 갖춰나가고 있다. 이 회장은 "3년 내에 글로벌 화장품 ODM 업계 1위로 도약하고 오는 2022년 매출 1조4,000억원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글로벌 성장엔진을 가동하고 있다"며 "적극적인 해외시장 개척을 통해 K뷰티를 전 세계에 알리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中 진출 10년째 12억으로 시작해 매출 1,200억 돌파 "로컬브랜드 90% 고객으로 FTA 타격? 되레 기회될 것" 이경수 코스맥스 회장이 중국 진출을 결심했던 10년 전 대다수 제조기업들이 중국의 저임금과 해외수출을 염두에 두고 중국에 공장을 지었지만 이 회장은 달랐다. 당시 그가 본 중국은 화장기 없는 여성들로 가득한 나라였다. 이 여성들 중 일부만 화장을 시작해도 미국을 뛰어넘는 거대 화장품 시장이 탄생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이 회장의 눈은 빛났다. 지난 10월 코스맥스는 중국 진출 10주년을 맞았다. 당시 법인 설립과 상하이 공장 신축 등을 위해 이 회장이 처음 투자한 돈은 100만달러. 자본금 약 12억원으로 시작한 코스맥스 차이나는 올해 사상 처음으로 매출 1,200억원 돌파가 점쳐지고 있다. 여기에 남서부 화장품 브랜드에 대한 공급 대응력 확대를 위해 지난해 3월 신축한 광저우 공장은 올해 손익분기점 돌파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매년 급증하는 주문에 상하이 공장은 현재 증설을 진행 중이고 광저우 공장은 내년에 증축 공사에 들어간다. 이 회장은 "한국 화장품 ODM 산업에서는 최초가 아니었지만 중국에 진출한 한국 ODM 기업은 코스맥스가 처음이었다"며 "중국 내수시장을 공략하기로 하고 중국 로컬 브랜드의 90% 이상을 고객으로 확보했던 것이 연평균 40%에 달하는 성장의 비결"이라며 웃었다. 매달 한 차례 이상 상하이와 광저우 공장을 방문하며 이 회장은 중국 화장품 산업의 변화를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그는 "10년 전만 해도 현지 브랜드의 품질경쟁력이 약했지만 코스맥스와 제품을 기획·개발하면서 중국 화장품 산업도 빠르게 업그레이드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중국법인은 코스맥스 글로벌 사업을 총괄하는 본부로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이 회장의 구상이다. 그는 "3년 후에는 중국을 포함한 글로벌 매출이 한국 매출을 넘어서게 될 것"이라며 "중국·인도네시아·미국·한국 등 전 세계 생산기지에서 각각 처리하던 원부자재 주문을 중국에서 일괄하면 규모의 경제 효과를 누릴 수 있고 원가 절감 효과도 커진다"고 설명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되면서 중국 내 생산기지를 보유한 국내 화장품 ODM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이 회장은 "코스맥스 중국법인은 90%가 중국 내 로컬 기업을 위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국산 화장품이 중국에서 많은 인기를 얻게 되면 코스맥스 중국법인을 통해 현지생산이 많이 이뤄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국내 브랜드 제품 판매가 호조를 보이면 이 역시 코스맥스에 호재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이 회장은 "소비세율 인하 혹은 폐지로 국내 브랜드 제품이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게 된다면 국내 화장품의 30%를 생산하는 코스맥스에는 호재일 수밖에 없다"며 "국산 브랜드의 완제품 수출이 늘어날수록 국내 실적도 좋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
He is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