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미국ㆍ유럽연합(EU) 간 자유무역협정(FTA) 등 '메가 FTA'를 체결해 글로벌 통상질서를 주도하려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구상에 잇달아 제동이 걸리면서 미국의 대중 경제봉쇄 전략도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1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 하원은 이날 TPP 핵심 연계법안인 무역조정지원제도(TAA) 법안에 대한 재투표 시한을 오는 7월 말로 연장하는 방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263표, 반대 189표로 통과시켰다. TAA는 TPP로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들의 이직과 재교육 등을 지원하는 법안이다. 지난 13일에 이어 TAA 법안이 부결될 게 확실하자 투표시한을 6주간 연장한 것이다.
하지만 시간 벌기에 불과할 뿐 TAA 법안이 통과될지는 의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친정'인 민주당의 대다수 의원은 제조업 일자리 감소, 노조 반발, 환경파괴 등을 이유로 TPP 자체에 반대하고 있다. TAA 안건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패키지 법안인 무역협상촉진권한(TPA), 이른바 패스트트랙 법안도 법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TPP 협상에 차질을 빚게 된다.
또 7월 말 TAA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더라도 올해 안으로 TPP가 미 의회의 비준을 받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올 하반기 참여국 간 협상에 박차를 가하더라도 협상 타결 이후 2개월 내 협정문 공개, 한달 뒤 대통령의 서명 등 절차를 감안하면 물리적 시간이 빠듯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올해 말부터 대선정국에 휘말리면서 워싱턴 정치권이 TPP 비준에 더 소극적으로 돌아설 공산이 크다.
로이터는 이날 "TPP 협상이 지연되면서 동맹국들은 미국의 리더십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며 중국은 미국의 영향력 약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서 "오바마 대통령이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해 추진 중인 '아시아 중심축(pivot to Asia)' 구상도 위협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TPP가 무산될 경우 중국 주도의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 계획에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이 합류하면서 오히려 미국이 소외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미ㆍEU 간 FTA인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 협상마저 난항을 거듭하면서 오바마 대통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다음달 벨기에 브뤼셀에서 10차 실무협상이 열리지만 관세철폐 범위, 투자자정부제소(ISDS), 유전자변형 제품 등에 대한 양측의 이견이 워낙 커 논의주제마저 정하지 못하고 있다. 로이터는 한 협상 참가자의 발언을 인용해 "양측이 실제 협상은 시작도 못했고 일러봐야 2019년에나 타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제는 타결시한이 늦어질 경우 TPP와 TTIP 체결로 새로운 국제적 무역규범을 만들어 중국을 미국 주도의 글로벌 통상질서에 가두려는 오바마 대통령의 계획도 무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서방 선진국마저 미국의 중국 봉쇄 전략을 외면하면서 미ㆍEU FTA의 정치ㆍ외교적 효과는 갈수록 퇴색하는 실정이다. 유럽이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대거 참여하고 중국은 EU인프라투자펀드에 수십억달러를 투자하기로 결정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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