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구제금융 신세를 진 아일랜드에 재정위기 극복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국채금리는 위기 이후 처음으로 스페인보다 낮아졌고 주가도 지난 1년 사이 30% 이상 오르는 등 다른 재정위기 국가들과 달리 시장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혹독한 긴축재정 이행으로 이미 금융시장에서 남다른 성과를 올리고 있는데다 지난주 열린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정상회의를 계기로 채무부담을 덜 수 있는 본격적인 터닝포인트를 맞았다는 분석이 제기되면서 아일랜드가 유럽 '구제금융 5인방'의 모범사례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안정화기구(ESM)를 회원국의 개별은행에 직접 투입할 수 있도록 합의한 유로존 정상회의 이후 아일랜드의 재정위기 극복에 대한 낙관론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2일 전했다. 유로존 정상들의 합의로 은행 구제에 지금까지 640억유로를 투입해온 아일랜드 정부가 채무부담을 상당 부분 덜게 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아일랜드가 2010년 11월 구제금융을 받은 이래 처음으로 국채시장으로 복귀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증폭되고 있다.
브라이언 헤이스 아일랜드 재무부 차관도 "앞으로 수 개월 동안 거치게 될 매우 힘든 협상과정을 과소평가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유럽은 (재정위기 극복의) 성공 스토리가 필요하고 적절한 도움이 주어진다면 우리가 그것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정부의 채무부담 경감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실제 아일랜드 정부의 장기자금 조달비용은 이날 2009년 2월 이래 처음으로 스페인을 밑돌며 시장의 기대감을 반영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아일랜드의 9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이날 6.208%까지 하락, 구제금융에 손을 벌리기 전인 2010년 10월 이래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이는 같은 날 스페인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6.375%)보다도 낮은 수치다. FT는 이 같은 시장의 신뢰회복을 십분 활용하기 위해 아일랜드 국채관리기구(NTMA)가 이르면 이번주 내에 단기국채 발행에 나설 수 있다고 전했다. 국채시장 복귀는 오는 2013년 구제금융을 졸업하기 위한 첫 수순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일랜드에 대한 낙관론은 이미 1년 전부터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지난해 초 정권을 잡은 중도우파 정권의 고강도 긴축과 경제개혁이 시장의 호응을 이끌어낸 결과다. FT는 지난 1년 동안 스페인과 이탈리아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각각 0.86%포인트와 0.83%포인트 오른 반면 아일랜드의 국채 수익률은 3.41%포인트나 하락했다고 분석했다. 아일랜드 주가지수도 지난해 9월 이래 30% 이상 올라 유럽 전체 시황을 반영하는 FTSE 유로퍼스트300지수를 15%포인트나 앞질렀다.
실물경제도 시장의 호조를 뒷받침하고 있다. 2일 발표된 아일랜드의 6월 NCB 구매관리자지수는 53.1을 기록하며 전월의 51.2에서 한층 상승해 제조업 호조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음을 나타냈다. 제조업고용지수도 1999년 12월 이래 가장 높은 55.9를 기록하며 4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이처럼 아일랜드 경제회생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어오르자 일각에서는 경고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350억유로가량의 구제자금이 투입된 부실은행들의 시장 가치가 94억유로 수준으로 하락한 상태에서 ESM이 이들 은행의 정부 지분을 사들인다고 해도 정부의 대규모 재정손실이 불가피한데다 EU 정상회의 합의사항이 실제로 이행되기까지는 적잖은 진통을 겪어야 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마이크 어메이 핌코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ESM이 아일랜드 은행들에 투입된다면 아일랜드 정부에는 매우 좋은 일임이 분명하지만 실제 이행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지나친 낙관론을 펴기에는 이르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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