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윤 군사평론가·국방연구원 명예연구위원
지금 세계 뉴스의 초점은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한 사람을 향해 있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다. 상식을 넘은 기행이 트럼프 현상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막말과 선정적 표현, 거침없는 독설에 유권자들은 열광한다. 미국 중심주의, 백인 우월주의에 더해진 고전적 ‘마초 맨(남자다움)’이미지는 그간 자존심 상했던 미국인들에겐 큰 자극제다.
그의 성공 신화와 자신감, 투지에 찬 저돌적 언행은 대리만족을 주면서 트럼프 현상의 밑거름이 된다. 이런 신드롬이 돌풍으로 지속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일시적일 수도 있으나 어떻든 여론의 지지를 업어 공화당 후보 중 부동의 1위인 트럼프다. 미국 CNN방송이 여론조사기관 ORC와 공동으로 실시해 19일(현지시간)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민주, 공화 전체 후보를 놓고 한 조사에서 클린턴 전 장관의 지지율이 51%로 1위였지만, 2위인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45%)와의 격차가 불과 6% 포인트로, 한달 전(16% 포인트 차이)에 비해 눈에 띄게 좁혀졌다. 노이즈 마케팅의 효과일 수도 있고, 보수 백인층이 갖는 불만과 위기의식의 반영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의 발언 가운데 유독 우리의 주목을 끄는 내용이 있다. 지난 7월 21일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블러프턴 유세에서의 행보다. 한국이 안보 무임승차를 한다고 꼬집고 나선 것이다. 안보를 미국에 떠맡긴 채 한국은 돈만 번다는 식이다.
한국이 9,000억 원(전체의 45%)이 넘는 방위비를 분담하고 있음을 모를 리가 없다. 설령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그렇다. 그는 미국인들이 가장 혐오하는 ‘무임승차’란 어휘로 미국인들을 자극한 것이다. 트럼프 현상은 수면 아래 있는 신(新)고립주의 흐름과 어우러진 결과일 수도 있다. 배경엔 유일 G1국으로 세계경찰이었던 미국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는 상실감도 깔려 있다.
지금 세계에는 1930년대 경제 불황기처럼 암울하다는 비관적 시각이 일고 있다. 1차 세계대전(1914.7~1918.11) 패전 후 암울했던 시기에 히틀러가 대중적 인기를 업고 등장한 것처럼 유럽에선 극우정당이 세를 얻고 있다. 태평양전쟁 패전국인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중산층의 몰락과 대중의 불안과 불만, 미래에 대한 절망감이 자양분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트럼프 현상도 이와 무관치 않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트럼프 현상의 안보적 영향일 수밖에 없다. 트럼프 현상과 2014년 QDR(4년주기 국방검토보고서)을 함께 보면 윤곽이 잡힌다.
국방예산의 압박을 받고 있는 미국이 동맹국의 역할과 재정적 기여를 지금보다 더 늘려야 한다고 거세게 요구하고 나설 것이다. 만성적 채무와 재정적자를 안고 있는 미국으로선 줄일 수 있는 것은 모두 줄여야 할 형편이다. 병력감축이나 해외기지 재조정, 최소한의 군사적 개입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신무기개발이나 무기획득도 예외가 아니다.
한편, 미군 전력의 경우 주둔이 아닌 투사(Projection) 개념으로 운용될 것이므로 전략적 유연성은 더욱 중시될 것이다. 북한 핵위협에 직면한 우리로선 주변국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하니, 한·미 관계에서 운신의 폭이 더욱 제한될 상황이다.
새로운 미국을 상대할 수도 있다. 그만큼 불확실성이 높아졌다. 그러니 트럼프 현상은 물론 그 이면까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선거판세도 면밀히 읽어야 한다. 상황을 정확하게 예측해야 제대로 된 대비책을 강구할 수 있는 것이다. 미래 전략동맹 비전을 구체화할 대안개발에 정책 당국자 및 안보 전문가의 지혜로움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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