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귀를 의심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지난달 25일 정부세종청사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을 구조개혁론자로 지칭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최경환 경제팀으로부터 금리인하 압박을 받던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바보야 문제는 (구조개혁) 실천이야"라며 반박한 데 대한 해명이었다. 최 부총리의 설명은 이렇다. "환자를 수술하려면 체력을 어느 정도 회복해야 한다. 초반에는 분위기 반전을 위해 (확장정책을) 한 것으로 생각해달라. 본질적으로 경제의 잠재력을 높이려면 구조개혁이 중심이 돼야 한다."
최 부총리의 상황인식에 100% 공감한다. 발등에 불이 경기추락인데 양극화 해소와 성장잠재력 확충 같은 장기과제를 꺼내 들어봐야 "그렇게 한가한가"라는 소리를 안 들으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기자는 최 부총리가 구조개혁론자라고 자평한 것을 믿고 싶다. 그 단초는 보인다. "인위적 증시부양에 반대한다"며 일각의 증권거래세 인하를 일축했다.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증시부양 실탄으로 연기금을 쌈짓돈처럼 동원하는 것도 부정적인 기류다.
무기력증서 빠져나온 2기 경제팀
지난 7월16일 경제사령탑 취임 이후 최 부총리는 화려한 쇼를 펼쳤다. 과감한 경기부양책도 인상적이거니와 정곡을 찌르는 화술은 압권이다. 정책의제를 설정하는 일련의 과정도 탁월하다. 언론 경력과 정치인 특유의 정무감각이다.
최 부총리는 취임 첫날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며 1기 경제팀의 정책방향을 확 바꿔버렸다. 금기시돼온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한여름 겨울옷'이라며 한 방에 풀어버렸다. '축소균형'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41조원+α에 이르는 확장적 재정정책을 꺼내 들었다. 기업소득 환류세제 3종 세트 같은 제도는 기존 정통 관료라면 어지간해서는 착안조차 어렵다.
오는 23일로 최경환 경제팀이 출범한 지 꼭 100일째가 된다. 초기부터 화끈한 부양책을 편 2기 경제팀은 박근혜 정부 1기 경제팀과는 정책 색채가 다르다. 모르긴 해도 창조경제의 길을 찾느라 허송세월한 전임 경제팀의 전철만은 밟지 않겠다는 의지임이 분명하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슈퍼달러-엔저 공습에 주가가 곤두박질치자 최경환표 경제정책에 대한 회의론이 적잖이 고개를 들고 있다. 부동산과 주식 같은 자산시장의 '최경환 효과'는 슬며시 자취를 감춰버렸다. 돈을 쏟아붓고 규제를 파격적으로 푼 경기부양책에도 내수회복은 미약하고 투자심리는 제자리걸음이니 그런 지적이 결코 무리는 아니다.
취임 3개월여 만에 정책성과를 평가하기는 이르다. 경제정책 회의론은 역설적으로 최경환 경제팀에 대한 높은 기대감의 또 다른 목소리다. 국정감사에서 야당의 지적처럼 주가하락을 정책실패로 몰고 가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인위적 증시부양을 하지 않겠다는 데 오히려 후한 점수를 줘야 한다.
그렇다고 마냥 박수만 보낼 수는 없다. 지도에 없는 길을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했는데 과연 나침반을 들고 가는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최근 발표된 몇몇 구조개혁 과제는 아직도 경제혁신3개년계획의 연장선이다. 정책기조를 확 바꿨음에도 구조개혁의 틀은 과거와 하나도 다를 바 없다는 점은 적이 실망스럽다.
구조개혁도 경제혁신 3개년 틀 벗어야
지도에 없는 길은 단기부양이 아니라 구조개혁이어야 한다. 사실 선 성장, 후 구조개혁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말이다. 듣기에 따라 후자는 대충하겠다는 뜻으로도 들린다. 부양 카드로 성장률을 단기 견인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정책 부작용을 무릅쓸 뚝심과 배짱이 있으면 그만이다. 그것은 진정한 리더십이 아니라 독선이다. 곧 발표될 3·4분기 성장률이 2·4분기(0.5%)의 2배 정도 된다고 해서 성과를 냈다고 보기는 어렵다.
최경환 경제팀의 진정한 시험대는 이제부터다. 5년간 유동성 잔치에 취한 세계 경제는 돈줄이 막히자 진정한 실력을 드러내고 있다. 유로존은 재차 흔들리고 이웃 나라 아베노믹스의 한계도 드러나고 있다. 2008년 리먼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그랬듯 미국의 출구전략 역시 미지의 길이다. 경제팀이 내수활성화 차원에서 안간힘을 쏟는 자산 시장 정상화는 출구전략 시행으로 한 방에 좌절될 수도 있다. 규제를 풀어 부동산을 띄운들 실물경제의 뒷받침 없이는 사상누각일 뿐이다. 내우외환 위기 앞에 나침반을 들고 지도에 없는 길을 가고 있는지 정녕 궁금하다.
/권구찬 경제부장 chans@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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