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섬유기업들이 미국으로 몰려가고 있다. 그동안 값싼 인건비와 전력요금·땅값 등에 힘입어 본국에서 방적공장을 운영해온 아시아 기업들은 최근 임금과 부동산 가격이 무섭게 오르며 생산비용이 뛰자 셰일혁명으로 싼 가격에 전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 미국으로 속속 옮겨가고 있다. 과거 미국에서 아시아로 떠났던 자동차, 정보기술(IT) 산업이 최근 미국으로 회귀하고 있는 가운데 이제는 대표적 개도국형 산업으로 꼽히는 섬유까지 미국으로 유입되는 양상이다.
2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과 인도의 섬유기업들을 중심으로 미국에 방적공장을 짓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저장성 항저우에서 방적공장을 운영하는 키어그룹은 최근 2억1,800만달러를 들여 미국 동남부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랭커스터시에 공장을 짓기로 했다. 지난 9월에는 중국 JN섬유가 4,500만달러를 들여 역시 사우스캐롤라이나에 플라스틱병을 폴리에스테르 섬유로 재활용하는 공장을 짓겠다고 약속했다. 인도의 시리발랍피티그룹 역시 7,000만달러를 들여 조지아주에 공장을 설립하기로 했으며 알록산업도 미국 남부에 방적공장을 짓겠다고 4월 발표한 바 있다.
중국 섬유기업의 미국행을 부추기고 있는 것은 무섭게 오르는 중국의 인건비다. 중국 본토에서 매년 평균 20%씩 임금을 올리느니 미국에서 실을 생산하는 것이 더 저렴하다고 기업들이 판단한 것이다.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의 연구에 따르면 2010년 현재 실 1㎏을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이 중국의 경우 4.13달러에 달하는 반면 미국에서는 3.45달러에 그친다. 2003년 조사 당시 중국이 2.76달러, 미국이 2.86달러였던 데서 역전된 것이다. 가파르게 치솟는 중국 부동산 가격과 방적공장이 포화상태라고 판단한 중국의 규제당국이 신규 공장 설립을 제약하고 있는 점도 이런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인도 기업은 셰일혁명으로 저렴해진 전력 사용료와 안정적인 전력 공급망을 노리고 미국으로 향하고 있다. 시리발랍피티그룹의 국제개발 부문 부회장인 줄피카 람잔은 "방적공장은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야 하는데 인도에서의 불안정한 전력공급은 회사 경영에 치명적인 타격"이라고 설명했다. 인도에서는 지난해 8월 대규모 정전으로 전 국민의 절반에 달하는 6억명이 피해를 입는 등 전력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미국 주 정부들이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기업들에 대규모 세제혜택을 제공하는 점도 아시아의 섬유공장을 끌어들이는 요인이다. 일례로 랭커스터시는 키어그룹 방적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770만달러의 지방채를 발행해 키어그룹의 부동산 취득을 지원했으며 회사 측이 이를 다 갚을 때까지 매년 세금의 60%를 환급해주는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고 있다. 또 미국 방적공장에서 생산된 실이 미국 내에서 판매되면 관세혜택까지 볼 수 있다는 점도 아시아 섬유업체의 미국행을 부채질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과 인도의 인건비·부동산 가격 상승 및 전력난이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되는 반면 미국의 전력비용은 점차 낮아질 것이라는 점에서 이런 현상이 앞으로 더 활발히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의 마이클 진저는 "중국이 누려왔던 이점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며 "섬유기업들의 미국행은 이제 막 시작됐다"고 밝혔다. 아메리카증권의 케빈 펜 상무이사도 "현재 지구상에서 미국보다 저렴하게 실을 생산할 수 있는 곳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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