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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것들 재활용해 작품으로 현대사회 병폐 치유 메시지 담아

영국 젊은 작가 스털링 루비 개인전

스프레이 연작 앞에 서 있는 스털링 루비.

1980년대 초반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한 시골 마을. 한 소년의 주변에는 아미시(Amishㆍ기독교의 한 종파로 문명에서 벗어나 엄격한 규율에 따라 18세기처럼 생활하는 집단) 친구들이 많았다. 집에 놀러 가면 친구의 할머니가 가족들의 해진 옷을 재료로 만든 식탁보나 여러 종류의 천을 이어 만든 이불보가 소년의 눈길을 끌었다. 형형색색의 조각보는 성인이 된 후에도 그에게 유년 시절의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가 바로 미국의 젊은 작가군 중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스털링 루비(Sterling Rubyㆍ41)다. 지난 해 여름 미국의 월간지 '아트 앤 옥션(Art + Auction)'이 선정한 '미래에 가장 소장가치가 있는 작품의 작가 50인' 가운데 한 명으로, 그의 회화 작품 한 점은 50만 달러를 넘나들고 있다.

오는 5월 10일까지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스털링 루비전은 오랜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는 조각보에 대한 기억처럼 사용했던 재료의 재활용(recycling),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애착이 고스란히 작품으로 이어졌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스프레이 페인팅 기법으로 그려진 대형 회화. 수채화가 물에 담겨 원래의 선명한 색채를 잃은 듯 뿌옇게 보이는 이 작품은 갱단들이 영토싸움을 하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2000년대 초반 LA에 정착한 스털링 루비에 따르면 수십 개의 갱단들이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스프레이로 벽에 흔적을 남겼다. 아침에는 3~4개 정도였던 흔적들이 저녁이 되면 수십 개로 늘어나고, 다음날 아침에는 경찰들이 그 흔적을 지워버려 다시 흰 벽이 됐다. 그렇게 칠하고 지우기를 반복해 스프레이 흔적이 남은 벽을 모티브로 해 스프레이 회화를 완성했다는 것이다.

그의 주요한 작품 중 하나인 EXHM은 골판지를 재료로 한 모든 작품들을 총괄해 지칭하는 제목이다. 작가가 대규모 우레탄 조각을 제작했을 때나 스프레이 페인팅 작업을 할 때 바닥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사용했던 골판지 조각들이 작품으로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시간의 흔적을 나타내듯 먼지와 발자국, 테이프 자국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교도소를 찍은 사진이나 유적을 발굴하고 있는 사진들이 부착돼 근원에 대한, 그리고 치유에 대한 작가의 깊은 관심을 보여준다. 타버린 도자기와 여러 오브제를 더해 하나의 작품으로 만든 '베이슨(Basin)' 연작도 재활용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작가는 굽는 과정에서 타버린 잔재를 작품에 담아 생명을 다한 물질이 다시 새로운 생명을 얻고 구원 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조각 작품은 완성된 후의 모습만 우리가 볼 수 있지만 나는 그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버려진 것들을 재사용하고, 다시 한 번 돌아봄으로써 내 자신의 트라우마도 치유되는 것 같습니다. 현대 사회의 여러 병리적 현상으로 고통 받는 이들도 그런 의미에서 제 작품을 통해 치유의 메시지를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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