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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국내 의약품 도매업계에서 대형 인수·합병(M&A)이 이뤄졌다. 국내 1위 업체인 지오영의 지분 40%를 신생 사모펀드인 앵커에퀴티파트너스(AEP)가 사들인 것이다.
지오영은 전국 2만여개 약국 중 9,000여곳과 거래하고 있고 세브란스병원 등 대형 병원에도 납품하며 국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기업이라 지오영의 지분 매각은 의약품 업계뿐만 아니라 M&A 시장에서도 큰 관심을 받았다.
1년 가까이 협상을 벌인 결과 AEP는 골드만삭스가 갖고 있던 지오영 지분 45% 가운데 25%와 지오영의 자사주 일부를 인수하게 됐다. AFP는 성장 가능성 높은 매력적인 투자처에 투자했고 골드만삭스와 지오영은 보유 지분을 높은 가격에 매각할 수 있었다. 특히 지오영은 경영권 간섭을 받지 않는 조건에 계약을 성사시키면서 경영권 방어와 유동성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어서 성공적인 딜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오영의 지분 매각 과정에서 법률 대리인으로 계약과 관련된 제반 업무를 담당한 곳은 법무법인(로펌) 현이었다.
현의 전신은 지난 2007년 대형로펌 출신인 이완수 변호사와 공승배 변호사 등이 설립한 법률사무소 아침이다. 2009년 3월 로펌의 규모의 커지면서 간판을 현으로 바꿔 달게 됐다.
현재 변호사 수는 30여명으로 규모 면에서는 대형 로펌에 크게 뒤진다. 하지만 현은 설립 7년 만에 M&A를 중심으로 잇달아 성과를 내면서 기업자문 분야 신흥강자로 떠올랐다.
현은 지오영 지문 매각 뿐만 아니라 인텔의 올라웍스 지분 인수 과정에도 올라웍스를 대리해 지분 매각 과정을 자문해 업계 주목을 받았다.
올라웍스는 인터넷이나 컴퓨터, 휴대전화 등에 올린 사진을 얼굴별로 자동인식해 분류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벤처기업. 인텔이 투자회사인 인텔캐피털을 통해 국내 벤처기업에 투자한 적은 있었지만 국내 기업을 직접 인수한 것은 올라웍스가 처음이었다.
이처럼 M&A 리그테이블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현은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세계적 평가기관인 체임버스앤파트너스와 불룸버그에 따르면 현은 2012년에 이어 지난해 국내 로펌 중 7위를 차지했다. 머저마켓 집계에서도 2012년 10위, 지난해 9위를 각각 기록했다.
현은 M&A분야를 넘어 금융·지적재산권 분야 등에서도 성과를 나타내며 대형 로펌에 뒤지는 않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금융분야에서는 한해 150건 이상의 사건을 맡으며 대형 로펌과 견줘 손색없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의왕도시공사가 추진하는 1조3,000억원대 백운호수 도시개발사업을 맡아 법령 검토, 파이낸싱과 관련된 계약서 작성 등 관련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지재권 분야에선 세계적인 레고(LEGO) 거래 사이트인 브릭링크(BrickLink.com) 사이트 리뉴얼과 신규 사업모델에 관한 법률자문과 용인 에버랜드 안에 가수 싸이의 3D 홀로그램관을 열기 위한 법률자문을 맡고 있다.
신생 로펌으로 분류되는 현이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비결은 각 분야별로 뛰어난 인재들이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문팀을 이끌고 있는 공승배 변호사는 법무법인 광장과 화우를 거치면서 M&A와 채권발행 등 자본시장 분야에서 잔뼈가 굵었다. 공 변호사는 지난 2002년에는 국내 법조인으로 처음으로 미국 재무분석사(CFA)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금융팀의 리더인 김동철 대표변호사도 변호사 업무를 시작할 때부터 금융분야를 집중 공략해 최고 전문가 자리에 올랐다. 김 대표의 지휘 아래 현의 금융팀은 국내 로펌 중 파이낸싱 분야에서 다섯번째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밖에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정보전자공학부 위촉연구원이자 현의 지재권팀장인 이성우 변호사, 조세분쟁에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는 강남규 변호사 등이 현을 이끌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신생 로펌이자 사법연수원 기수가 높지 않은 변호사들로 구성된 현이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이유는 각 분야별 전문가들이 뛰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법무법인 현은 '분야별로 야무지게 일 잘하는 젊은 변호사들이 모여 의뢰인에게 전력을 다해 남다른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설립됐다.
법무법인 현이 신생 로펌답지 않은 성과를 거두는 배경에는 '최고의 효율을 내기 위해 파트너십의 이념을 철저히 구현한다'는 경영 방식도 작용한다.
이는 특정인이 회사를 소유하면 팀별 시너지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현은 모든 의사결정을 파트너회의를 통해 다수결로 정한다. 대표변호사의 임기도 3년 단임제로 정했다. 아울러 선·후배 변호사들의 관계도 수직관계가 아니라 수평적인 관계를 추구한다.
김동철 대표변호사는 "신생회사의 장점은 헝그리 정신"이라며 "앞으로도 고객에게 최선을 다해 헌신하는 로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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