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은 10~19일 전국 교수 62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체의 28.1%(176명)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거세개탁'을 선택했다고 23일 밝혔다.
들 거(擧), 세상 세(世), 다 개(皆), 흐릴 탁(濁) 4글자로 구성된 거세개탁은 '온 세상이 모두 탁해 홀로 맑게 깨어있기 힘들다'는 뜻을 가진 고사성어다. 초나라의 충신 굴원(屈原)이 지은 어부사(漁父辭)에 실렸다.
모함으로 벼슬에서 쫓겨난 굴원이 강가를 거닐며 시를 읊고 있자 고기잡이 영감이 그를 알아보고 어찌 그 꼴이 됐냐고 물었다. 이에 굴원은 "온 세상이 흐린데 나만 홀로 맑고 뭇 사람이 다 취해 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어 쫓겨났다"고 답했던 고사에서 비롯됐다.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거세개탁이 뽑힌 것이 지식인은 물론이고 정치권·공무원 사회의 혼탁함이 만연해 위정자 및 지식인의 자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거세개탁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추천한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바른 목소리를 내야 할 지식인과 교수들마저 정치 참여를 빌미로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파당적 언행을 일삼고 있으며 정부와 검경 등 공무원 사회의 부패도 급격히 악화되고 있지만 해법과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사유를 밝혔다.
정영철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역시 "올 한 해는 유난히도 강력범죄와 사회적 병리현상이 많았지만 이를 해결할 지식인들은 권력에 붙어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했다"고 말했고 박상규 강원대 경영학과 교수 역시 "선거철만 되면 자기 분야를 떠나 특정 후보의 대변인을 자처하며 궤변의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 때문에 국민들이 혼란을 겪고 불안해 한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2위에 오른 사자성어는 '나라를 다스리는 권력은 백성에게 있다'는 뜻의 대권재민(大權在民)이었다. 교수 163명(26%)의 지지를 받았다. 뒤를 이어 '믿음이 없으면 일어설 수 없다'는 뜻의 무신불립(無信不立)이 147명(23.4%)의 선택을 받았다.
올해의 사자성어는 각 분야 교수 40명에게서 사자성어 28개를 추천 받은 뒤 교수신문 필진과 명예교수 30명이 성어 5개를 추려내 설문조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지난해에는 나쁜 일을 하고 비난을 듣기 싫어 귀를 막지만 소용없다는 뜻의 '엄이도종(掩耳盜鐘)'이, 2010년에는 진실을 숨겨두려 했지만 그 실마리는 이미 만천하에 드러나 있다는 뜻의 '장두노미(藏頭露尾)'가 각각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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