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 참여에 관심을 표명했다. 우리 협상대표가 협상 테이블에 앉으려면 기존 참여국 정부 및 몇몇 의회의 동의절차를 거쳐야 하니 4~6개월 정도의 기간이 소요된다. 이미 TPP 협정의 29개 장(chapter) 중 16개 정도가 합의된 것으로 보이고 미국이 연내 타결을 목표로 협상 속도를 높이고 있어 협정문안이 완료된 상황에서 우리가 단순 가입하게 될 가능성도 높다.
원산지규정 등 협상 일본 견제 불보듯 TPP는 상품 및 서비스 분야의 포괄적이고 높은 수준의 개방을 추구하는 협정이다. 또한 투자·지재권·경쟁·노동·환경·무역구제·중소기업·국영기업·원산지규정 등의 교역규범 측면에서 12개국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규제원칙들도 도출하게 된다.
특히 원산지규정을 통합하는 일은 중요하다. 12개국이 각각 양자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을 경우 총 66개의 양자 품목별원산지규정(PSR)이 필요한데 TPP는 12개국이 공통된 PSR에 의거해 특혜관세 혜택을 부여한다. 역내에서 교역하는 기업은 66개의 상이한 PSR을 놓고 씨름할 필요 없이 하나의 원산지요건에만 맞추도록 원료를 조달하고 생산하면 되니 원산지규정 통합은 TPP가 주는 최대 혜택이라 할 만하다. 역내에서 조달한 원료라면 마치 자국 내에서 조달한 것처럼 취급받는 규정도 도입될 것으로 보이므로 역내 재료 공급망도 활성화된다.
우리는 이미 미국 및 EU와 높은 수준의 FTA를 맺어 교역규범 분야에서 서구 선진국 수준의 제도화를 이룬 바가 있다.따라서 나중에 TPP에 가입하더라도 우리가 새로 갖춰야 할 제도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인터넷을 통해 유포된 지재권 분야 TPP 협상문안을 보더라도 대부분의 조항들이 한미·한-EU FTA 규정과 겹치고 저작권 보호기간을 100년으로 늘리거나 유전자원 이용에 대한 이익공유 조항 등이 추가로 논의되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원산지 규정이다. 우리 기업 관심품목에 대한 PSR의 통합 협상과정에 참여할 시기를 놓쳤으니 이미 통합된 PSR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이미 협상에 참여 중인 일본이 자국 기업들에 유리하고 경쟁 상대인 한국 기업들에 불리한 PSR을 TPP 규정에 반영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버스 떠난 후 손들고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처지의 우리에게는 만시지탄(晩時之歎)으로 남는 부분이다. 그렇더라도 통합 PSR이 주는 혜택을 놓칠 수는 없다.
승차 늦었지만 수출확대 이점 살려야 상품 및 서비스 분야 협상은 개별적으로 진행되므로 12개국과 양자협상을 거쳐 민감성을 반영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다만 기존 협상국들이 적용한 양허의 모댈러티(modality)가 있는 경우 이에 맞춰야 하는 부담은 있다. 다행히 일본이 쌀을 관세철폐 예외품목으로 인정 받는 데 성공한다면 우리도 나중에 예외품목을 주장할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하면 우리도 모든 품목에 대해 관세철폐 스케줄을 설정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우리 농업도 전략적 수출품목을 육성해나가야 한다. 66개 원산지 규정과 씨름하며 수출 농산물 및 가공식품을 생산하고 해외농업개발을 추진하는 체제는 국제경쟁력이 없다.
TPP 가입을 계기로 민감품목의 경우도 최장기 관세철폐 기간을 설정하고 그 기간 동안 농업 체질혁신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중국이 TPP를 대중국 포위망 체제로 인식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나 한중 FTA, 한중일 FTA, 그리고 포괄적지역경제동반자협정(RCEP) 협상에 이미 참여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TPP 참여를 놓고 중국을 지나치게 의식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우리의 TPP 참여가 한중일 FTA 및 RCEP 협상의 자극제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TPP 광역경제통합 시대가 주는 기회와 도전을 이제는 받아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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