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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一日一識] <45> 도전, 성공 못할 거면 하지도 마라?


지금은 KDB대우증권 수장이 된 홍성국 사장이 리서치 센터장 시절 쓴 책 ‘세계가 일본 된다’는 책이 항간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점점 가속화되고 있는 디플레이션 현상, 젊은이들의 도전하지 않는 정신과 보수주의 확산, 복지 과잉으로 인한 재정적 부담과 같은 이슈들이 일본 뿐 아니라 전 세계 경제의 특징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는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한국의 경제 동향에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전초전과 같은 징후가 발견된다고 우회적으로 인정한 바 있습니다. 이미 4분의 1쯤은 진행되고 있지 않느냐는 이야기까지 나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았던 부동산불패의 신화도 사그라든 모습입니다.

경제만 정체된 모습을 보이는 게 아닙니다. 일상 속에서도 더이상 혁신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경제사학자들에 따르면 1870년대 이후 인류 역사에서 획기적이라 할만한 기술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제품은 계속 나오고 있지만, 본질적인 부분을 바꾸는 변화는 좀처럼 제공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경제학자 슘페터는 자신의 저서인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에서 인류의 역사가 기술혁신의 역사라고 주장하기는 했지만,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면 될수록 이후에 새로운 그 무엇이 태어날 기회도 점점 줄어드는 것이 사실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완전한 발명보다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창조적으로 파괴하고, 새로운 형태로 재정비하는 형태의 혁신만이 인류사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도 말했죠.

사실상 혁신 부재의 시대입니다.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창조 경제 패러다임의 이상과 달리, 창업과 도전을 시도해 보려고 하는 젊은이들을 쉽게 발견할 수 없습니다. 올 초 어느 정보기술 분야의 젊은 창업가 중 한 사람이 방송 대담에 나와 특정 기업들 중심의 정보기술산업 생태계를 개탄한 바 있었죠. 어느덧 이 분야에서는 어느 기업이 선호하는 아이템이라는 소문이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척도가 되었다고도 합니다. 잘돼도 힘들고, 안돼도 힘듭니다. 일단 수익성이 높고 사용자 확보가 용이할수록 벤처나 작은 업체가 하던 사업을 자기네 회사 안에서 소화해 버리거나, 싼값에 인수하려고 갖은 시도를 한다는 불만이 쏟아져 나옵니다. 시장의 주목을 끌지 못하는 아이템은 벤처캐피탈이나 투자회사에서 자금을 유치하는 것 자체가 어렵습니다. 사실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벤처회사가 덱;압ㅇ[ 인수되면 비교적 단시간에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으니 ‘대기업이 혹할만한 아이템인가’가 투자의 기준 중 하나로 작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예비창업자들 사이에서도 ‘플랫폼’에 올릴 수 없는 아이템을 키워서 뭐하느냐는 믿음이 공유되고 있는 것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이 자기 복제의 공식에 빠져 혁신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애당초 시작할 수 있는 자신감조차 없어서 혁신을 못하는 상황에 가깝습니다. 정부는 기술금융 진흥을 통해 우수한 신기술을 담보로 대출받을 수 있는 길을 늘리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은행권의 일각에서는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입니다. 의무화된 형태의 대출이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고 나면 없어질 제도라는 인식이 널리 퍼진지 오래라고 합니다. 혁신은 새로운 시장 참여자에 대한 신뢰와 감성적 지지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들을 둘러싼 사회제도 자체가 매우 불신 일변도로 일관하고 있는데, 어떻게 해서 토대를 마련하고 자양분을 흡수할 수 있을지, 막막한 측면이 있습니다.



고기를 잘 잡는 어부가 되게끔 하려면 고기를 줄 것이 아니라 잡는 방법을 가르쳐 줘야 한다는 뻔한 고사가 이 대목에서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혁신을 이야기하면서도 오랫동안 초점을 맞추어 왔던 부분은 ‘성과’입니다. 아직도 새로운 기업이 몇 개 설립되었다, 일자리가 얼마나 창출됐다 와 같은 식의 정량적인 지표들만이 혁신의 결과물인양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 같은 내용도 ‘다른 수치’가 되기 십상입니다. 과거의 평가 지표와 체계가 대대적으로 개편되기 때문입니다. ‘우수하다’는 관점 자체가 새로 설정되어야 하므로, 과거에는 훌륭했던 것이 지금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며, 때로는 망하기도 해야만 정부 당국의 입장에서 ‘영을 세울 수 있다’는 암묵적인 믿음이 있는 듯도 합니다. 슘페터는 혁신이 기업가적 의지에 기반한 자발적 변화라고 말했습니다. 이마저도 우리 풍토에서는 관치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것 같아 씁쓸해집니다.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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