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부터 13일까지 사흘간 아시아 주요국 금융시장은 통화가치 급락과 증시 하락을 겪는 등 크게 요동치며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11일 하루 동안만 한때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180원까지 치솟았다가(통화가치 하락) 1,179원에 장을 마감했으며 코스피지수 역시 이날 2,000선이 무너지며 1,986으로 주저앉았다. 진원지는 중국 인민은행이었다. 사흘에 걸쳐 위안화의 통화가치를 4.55%나 기습적으로 떨어뜨리면서 한국 등 중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인민은행의 이 같은 조치는 사실상 중국이 자국의 경제 회복을 위해 금리·지준율 인하를 넘어서 본격적으로 통화전쟁에 가세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실제로 인민은행은 17일 "위안화가 양방향의 변동성을 가지고 있다"며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가뜩이나 일본의 엔저 공습으로 어려움을 겪어온 우리 경제로서는 설상가상이다.
하지만 진짜 폭풍우는 아직 몰려오지 않았다. 바로 미국의 금리인상이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금리인상이 이미 시장에 충분히 반영돼 있는데다 금리를 올리더라도 이후의 충격 최소화를 위해 속도 조절에 나설 것으로 예견된 만큼 시장의 충격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과연 그렇게 낙관적으로만 볼 일일까. 지난해 10월 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양적완화(QE) 종료를 공식 선언했다. 2008년 벤 버냉키 당시 연준 의장이 "루비콘 강을 건넜다"고 선언하며 이후 3차에 걸쳐 4조달러가 넘는 사상 초유의 돈 풀기에 나선지 6년여 만이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양적완화 종료에도 불구하고 연준의 또 다른 경기 부양카드였던 초저금리는 '상당기간' 유지하기로 했다는 점이었다. 가파른 경기 침체 우려에 직면한 한국 경제로서는 미국의 금리인상 지연으로 실물경기 회복을 위한 시간을 조금이나마 번 셈이다.
그 후 10개월이 속절없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 경제의 주요 지표는 회복은커녕 오히려 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지난해 3·4분기 0.8%(전 분기 대비)였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4·4분기에는 0.3%로 뚝 떨어졌고 올 1·4분기 0.8%로 잠시 회복세를 보였지만 2·4분기에는 다시 0.3%로 곤두박질쳤다. 이 과정에서 연초 정부가 낙관했던 올해 3%대 성장은 사실상 물 건너간 상태다. 물가 역시 지난해 4·4분기 1.0%(전년 동기 대비)로 겨우 1%에 턱걸이한 후 올 1·4분기와 2·4분기에는 각각 0.6%, 0.5%를 기록하면서 디플레이션 우려를 키우고 있다.
지금 글로벌 금융시장은 낯설기만 한 길을 겪고 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걸어본 길이 없는 미지의 길이다. 양적완화라는 전례 없는 경기 부양책이 그랬듯 이를 정상으로 되돌리는 과정 또한 마찬가지다. 그 파장이 어느 정도일지는 누구도 확신하지 못한다. 그저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막연한 예측들일 뿐이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구체적인 시기만 확정하지 않았을 뿐 연내 금리인상을 기정사실화한 상태다. 첫 금리인상 후 시장상황을 지켜보며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여기서 고려 대상은 미국 경제지 한국 등 다른 나라 상황은 관심사가 아니다. 이미 연준의 금리인상을 앞두고 국내 자금시장에서 외국인의 이탈 흐름이 확연하게 감지되고 있다. 잇따른 금리인하와 정부의 부동산 경기 활성화 대책이 맞물리면서 급격하게 불어난 가계대출의 위험성 경고도 잇따르고 있다. 물론 금리인상 전 한국 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나 극적인 반전을 보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미 1년 가까이 주어진 골든타임의 대부분은 지나쳐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폭풍우가 탈 없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어서는 안 된다. 다른 신흥국과 한국은 경제 펀더멘털이 다르다고 장담만 하고 있을 일은 더더욱 아니다. 충격을 피해갈 수는 없겠지만 이를 최소화할 철저한 대응책을 강구해야 할 때다.
/정두환 국제부장 dhch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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