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률, 특히 노인 자살률이 세계 1위라는 것은 사회 취약계층을 위한 우리나라 복지ㆍ의료의 낮은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하규섭 한국자살예방협회장(분당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ㆍ사진)은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급증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 "국가와 기업, 국민 모두가 눈에 보이는 성과에만 치중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소홀히 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970~1990년대 고속성장에 치중했다면 2000년대부터는 정신적인 안녕과 행복한 삶이라는 부분에 대한 관심 촉구가 이뤄졌어야 했죠. 하지만 현재까지도 우리나라는 눈에 보이는 성과물을 내는 것에만 급급하고 있습니다. 사회가 거칠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에 따른 나쁜 결과가 노인이나 청소년 등 사회 취약계층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특히 급증하고 있는 노인 자살에 대해 우려를 드러냈다. 하 회장은 "전체 자살자의 3분의1이 노인이고 증가세도 20~30대에 비해 훨씬 가파르다"며 "노인들이 더 이상한 비참한 마지막을 선택하게 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1920~1940년대 태어난 노인들이 보고 배우고 행해온 것들은 말하자면 '옛날식'입니다. 국가에 충성하고 부모를 공경하고 자식을 올바르게 길러내고…. 그러다 60~70세가 되면 가족들의 품에서 자연스럽게 죽을 것이라고 믿고 살아왔죠. 80~90세까지 살 줄은 전혀 몰랐고 준비도 당연히 안 돼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기도 힘든데 몸도 아프고 가족들도 모른 척한다면 죽음 외에 다른 선택지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을 것입니다."
하 회장은 현재의 노인 자살 문제가 결국 내 동료, 내 가족의 문제라는 점을 깨닫고 하루빨리 노인 건강과 복지를 증진시킬 수 있는 사회 안전망 구축에 힘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령화 사회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데 우리 사회의 노후 준비가 이렇게 부족하다면 앞으로도 노인 자살은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며 "이미 서울 노원구ㆍ동대문구 등에서 실시된 사업이 자살도 충분히 예방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만큼 최소한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는 고위험군에 대한 관리만이라도 당장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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