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을 막론하고 영웅 신화는 유사한 스토리 구조를 갖고 있다. 예사롭지 않은 탄생, 고난의 삶, 도전과 극적인 성취, 그리고 영웅적인 죽음으로 이어진다. 도시의 형성과 발전에도 영웅 신화의 판박이가 많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과 ‘오셀로’의 무대로 잘 알려진 베니스의 경우도 그 한 예다.
로마제국 말기, 한 번 지나가면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한다는 무서운 훈족의 침입 앞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이탈리아 베네토 사람들에게 신이 계시한 피난지는 습지와 갯벌뿐인 바다였다. 접근도 어렵고 사람이 살기도 어려운 이곳에 도망친 사람들이 피와 땀으로 물 위의 도시 베니스를 건설한다.
이렇게 탄생한 베니스는 중세의 어둠이 걷혀 가던 지난 14세기부터 18세기 말까지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의 물산과 사람이 모이는 유럽 제일의 경제 허브도시이자 음악∙연극∙미술이 꽃피는 문화의 성지로 각광 받게 된다.
견강부회일지 모르지만 인천경제자유구역도 베니스와 유사한 스토리를 갖고 있다.
1997년 12월 쓰나미가 밀려오듯 덮친 외환위기의 고통을 다시는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 외국 자본을 유치할 수 있는 거점인 싱가포르와 같은 경제 허브가 필요했고 2003년 바다와 갯벌 위에 인천경제자유구역이 탄생됐다. 바다를 매립해 땅을 만들고 동시에 도시를 건설하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정부의 지원도 시원치 않았고 2008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마저 닥쳤다.
그러나 생명은 고난을 먹고 자란다. 바다를 매립한 땅에 길을 내고, 길과 길 사이 빈터에 첨단 산업을 유치하고, 아파트∙학교∙호텔∙컨벤션을 지었다. 친환경도시를 표방하면서 우리나라 도시 중에 가장 풍성한 녹지와 공원을 만들고 모든 도시기능을 정보화해 제공하는 유비쿼터스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개방의 실험 또한 착실히 진행되고 있다.
유치원부터 초∙중∙고 과정의 국제학교와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이 우리나라 최초로 문을 열었다. 외국인 정주환경이 갖춰지며 2010년을 경계로 외국인 직접투자 실적도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최근에는 남미 에콰도르에 경제특구 개발 컨설팅 수출까지 이뤄냈다. 베니스 탄생 이후 1,500여년의 시간을 지나 바다 너머 중국을 응시하고 있는 인천 앞바다에 베니스와 같은 동북아 경제허브, 도시의 영웅 건설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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