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산도서관에서 남산케이블카 쪽으로 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길가에 석비가 하나 서 있다. 파인 부분(총탄 흔적)이 있기는 하지만 '한양공원(漢陽公園)'이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이곳도 남산에 있는 우리의 아픈 역사 중 하나다. 한양공원은 일제가 만든 공원이다. 조선 말 서울에 온 일본인들은 한양도성의 남쪽, 즉 남산 주위에 몰려 살았다. 식민지시대를 거치면서 북촌의 조선 상권과 대비되는 일본인의 상권이 만들어졌는데 경계는 대략 청계천이었다고 한다. 근대적 주거생활의 필수시설인 공원으로 지난 1908년 조성된 것이 바로 한양공원이다. 지금 남아 있는 석비의 글씨는 고종의 것이라고 한다. 이미 허수아비로 전락한 상황에서 선심을 쓴 것인지도 모른다. '장군의 아들' 같은 일제 강점기 배경 영화·드라마의 영향으로 우리는 보통 김두한 같은 '협객'들이 조선의 상권을 지켰다고 생각한다. 이는 일제의 의도이기도 했다. 청계천 북쪽은 전근대 사회로 방치하고 남쪽의 일본인 신식 문명과 대비시켰다. 일본인촌에만 상하수도와 포장도로·석조건축물·공원 등 근대 시설을 설치하면서 위압감을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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