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돈 지키려다 산 송장이 된 이중생… '또 다른 나'와 마주하다

[리뷰]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


"이 순간부터 영감님은 돌아가셨습니다." 상속 전문 변호사의 지시에 이중생의 가족들은 기꺼이 인형극을 자처한다. 이중생은 살아 있되 죽은 자가 되어 수의를 입고, 사위 송달지는 허울뿐인 상속자가 된다. 우스꽝스러운 연극의 목적은 오로지 돈. 악행으로 축적한 재산을 몰수당할 위기에 처하자 이중생은 자살을 가장해 장례식을 열고, 사위의 이름을 빼앗아 재산을 챙길 궁리를 한다.

국립극단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는 1949년 극작가 오영진이 발표한 원작의 통렬한 풍자를 고스란히 무대 위로 가져왔다. 일제 강점기 허구의 인물을 통해 조명한 인간의 탐욕과 파멸은 65년 후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로 다가온다. 물질만능주의자 이중생부터 나약한 지식인 송달지, 기회주의자 최 변호사 등 다양한 인간군상의 축소판인 캐릭터들은 이야기를 더욱 현실감 있게 드러낸다.

묵직한 메시지는 심각한 연기가 아닌 웃음으로 전달된다. 영정 뒤에 숨어 있던 이중생이 걸어 나오거나 최 변호사가 온몸을 던져 거짓말이 탄로 날 위기를 모면하는 장면 등 곳곳에서 관객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좌충우돌 사건 속에 웃음을 쏟아내는 사이 당당하던 이중생은 '제 입으로 변명 한 번 못하는' 송장이 되어 있고, 남은 건 벗지 못한 수의 뿐인 귀신이 되어 버린다. "아버지, 그 구차스러운 수의를 벗으십시오. 창피하지 않으세요?" 징용 갔다 살아 돌아온 아들의 한마디에 웃음기는 일거에 제거되고 관객은 비극을 마주한다. 극은 어둠 속에 나 홀로 환한 이중생의 영정을 보여주며 끝난다. 국립극단이 희곡의 재발견을 아우르는 주제로 '자기응시'를 꼽았듯 영정은 관객에게 묻는 듯하다. "이중생 안의 당신을 보았는가"라고. 28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