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가 자신의 이상을 펼치느라 양나라 혜왕을 만나 했던 첫마디는 "하필이면 이익이냐?"는 것이었다. 맹자는 공자의 여러 주장을 이익과 도덕의 틀로 압축해 자신의 지향을 분명히 했다. 논어와 맹자를 읽다 보면 '이익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지 않나'라는 의구심이 든다. 책에서 민생 문제를 들먹이면서도 사익(私益)을 부정하는 듯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니 모순되는 듯하다.
시민 희망을 현실로, 이윤을 사회로
하지만 논어와 맹자의 문맥을 찬찬히 읽다 보면 사정이 다르다. 공자는 사람의 자활 의지와 자원의 합리적 배분을 두루 중시하면서 "혜택을 주지만 낭비되지 않아야 한다"는 복지 원칙을 제시했다. 맹자는 정전제를 통해 항산(恒産)의 문제를 풀고자 했는데 이는 오늘날 말로 완전고용이라 할 만하다. 산업을 도외시하고 도덕 타령만 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두 사람은 이익을 중시했지만 우려의 눈길을 걷어낼 수 없었다. '돈 앞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너도나도 이익만 앞세우면 부모형제와 선후배 그리고 진리와 법도 뒷전으로 밀려난다. 사익은 늘 탐욕으로 발진할 수 있는 무한한 동력을 장착하고 있다.
전근대에는 대부분 사익의 파괴적 성향을 부각시키면서 이익을 종교사상의 통제 아래에 두려고 했지만 종교개혁 이후 '신의 영광을 위한다'는 전제에서 사익 추구를 허용했다. 시부사와 에이치는 메이지유신(明治維新)으로 새롭게 등장한 실업인이 사익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도의와 사익의 합일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봤다. 그는 이 생각을 '논어와 주판'으로 묶어냈다.
우리도 전근대에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사민(四民) 관념으로 상공인을 낮게 평가했지만 근대국가가 등장하면서 신분차별과 사익 추구에 대한 제재가 사라지게 됐다. 든든한 보호자가 없는 상황에서 다들 하나같이 각자도생(各自圖生ㆍ제각기 살아갈 방법을 도모함)의 길을 걸었다. 우리는 새 기준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사익을 추구할 수 있다"는 자유주의의 주장으로 정리했다.
지난 1950~1970년대까지는 자유주의의 교설을 들먹일 만한 기반시설ㆍ천연자원ㆍ사회자본 등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합법적 경쟁을 할 만한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아 합법적 경쟁보다 공정한 관리에 더 주목했다. 개인이 아닌 국가가 주도적으로 자본을 유치하고 자원을 배분하는 역할을 맡아 특혜니 유착이니 하는 말이 나왔다.
총체적인 경제 건설의 시대에 개인과 기업 그리고 정부의 모든 활동은 애국으로 연결됐다. 이 논의가 산업계에는 사업으로 국가에 이바지한다는 기업보국(企業保國)ㆍ사업보국(事業保國)으로 널리 퍼졌다. 기업활동은 이윤 창출이 우선임에도 불구하고 고용과 성장, 경제 자립화 등 국가적 목표를 소리 높이 외쳤다. 이런 분위기에서 환경ㆍ노동 분야의 목소리는 반국가적 행위로 여겨지기도 했다.
탐욕 통제하고 상생으로 이끌어
21세기에는 보국론이 더 이상 이익에 따라다니는 탐욕을 제어할 수 없다. 기업은 합법적 이익 추구를 하는 한 정부가 아니라 상품을 구매해 이윤을 창출하게 해주는 소비자ㆍ시민사회ㆍ지역공동체의 관심사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기업이 물고기라면 시민은 바다와 같다. 스마트폰 열풍이 보여주듯이 기업은 단순히 상품을 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희망을 현실화 시켜줄 때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이윤을 사회로 환류시킬 때 사랑 받는다.
이제 보국론보다 기회를 널리 주고 대중의 문제를 풀어주는 박시제중(博施濟衆)의 기치가 필요하다. 서구는 사람의 모든 행위가 신의 영광을 위한 활동이라는 공감대가 있으므로 모두를 위해 이윤을 나누는 기부 문화가 활성화돼 있다. 우리는 이웃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박시제중을 통해 탐욕을 통제하고 상생하는 새로운 기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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