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한국과 유럽연합(EU)이 가서명한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이탈리아의 차관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한ㆍEU FTA가 순조롭게 발효될지 벌써부터 의문이 제기되지만 우리 정부는 물론 EU 중심부에서도 이 같은 이탈리아의 '엄포'에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세계 최대 경제권과 세계 13위의 경제강국 간 FTA에 반발이 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FTA판 자체는 끄떡없다는 반응이다. 아돌포 우르소 이탈리아 경제개발부 차관이 거부권 행사를 피력한 것은 '국내 정치용'이라는 분석이 강하다. 한ㆍEU FTA의 대표적 수혜주인 자동차 교역에서 양측은 큰 이득을 기대하고 있지만 EU 내에서는 상대적으로 소외된 곳이 이탈리아다. 한ㆍEU FTA에 반대 입장을 피력한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도 EU집행위를 상대로 한 로비가 수포로 끝나자 이런 사정을 이용해 이탈리아 정부를 움직이는 데 주력해왔다. 우르소 차관의 발언이 앞뒤가 맞지 않는 점도 '정치적 수사'일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그는 "자동차 업체들의 반대를 극복할 명쾌한 최종 협정문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지만 EU집행위는 가서명에 앞서 회원국들과 수차례 협의를 거쳐 협정문을 확정했다. 가서명된 협정문은 재협상 없이는 바뀔 수 없다. 캐서린 애슈턴 EU 통상담당 집행위원도 가서명 직후 기자회견에서 "모든 회원국이 가서명에 동의했으며 이탈리아 정부도 협정을 지지했다"고 강조했다. 또 지난 7월 이명박 대통령이 G8 확대정상회의 참석차 이탈리아를 방문해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를 직접 만나 담판을 지으면서 한ㆍEU FTA 찬성으로 이미 기울어진 상태다. 다만 ACEA의 반대가 지속되면 한 · EU FTA 비준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FTA 발효를 위해 EU는 앞으로 '이사회 승인→양측 정식서명→EU 의회 비준'을 거쳐야 하는데 ACEA가 의회에 로비력을 집중하며 비준을 저지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이혜민 우리 측 대표는 "FTA로 피해를 볼 수 있는 이해관계자의 반발은 예상할 수 있는 것으로 EU 측이 해결해나갈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EU 입장에서 보면 연간 경제적 이익이 130억유로(24조원)에 달하고 2년 넘게 대외협상력을 집중해 낳은 FTA를 일부 자동차 업체의 반발로 뒤집기는 어렵다. 비준이 장기화될 가능성을 예상해 EU집행위는 정식 서명 후 우리 측 비준만 빨리 이뤄진다면 EU 의회 비준에 상관없이 실질적으로 FTA를 발효시킬 '잠정발효' 장치 가동에 대해서도 우리 측과 입을 맞춰놓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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